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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호박으로 부자동네 만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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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최근명씨(左)가 부인 이혜란씨와 함께 밭에서 호박을 수확해 들것에 담아 집으로 운반하고 있다. 서산=김성태 프리랜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15일 오후 충남 서산시 대산읍 운산5리 회포마을. 마을 진입로 양쪽으로 펼쳐진 밭에 노랗게 익어 가는 맷돌호박이 햇볕에 반사돼 반짝거린다. 고추.생강 등 다른 농작물의 잎이 축 늘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 마을에서 호박은 구경하기 힘든 작물이었다. 주민들은 밭에 파.고추 등을 재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전체의 밭 가운데 30%(6만여 평)를 맷돌호박이 차지하고 있다.

◆ 장기 저장이 관건=이 마을이 호박마을로 변신하게 된 것은 참샘골호박농장을 운영하는 최근명(52)씨 덕분이다. 이곳이 고향인 최씨는 20여 년간 느타리버섯을 길렀다. 그러나 연작(連作)으로 버섯 수확량이 줄면서 다른 작물에 눈길을 돌렸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 등을 찾아 조사한 끝에 수확기(가을)가 한참 지난 뒤 더 비싸게 팔리는 맷돌호박을 발견했다. 호박은 저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해 봄철에 가격이 올라간다. "저장 방법만 터득하면 괜찮은 소득원이 될 것 같았습니다. 여름철에는 맷돌호박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거든요."

그는 1997년 3000여 평의 밭에 호박을 심었다. 2년 동안 20여 차례의 실험 끝에 습도 70%, 실내온도 12~15도를 유지하면 1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000년에는 선반과 온도 조절 장치 등이 갖춰진 호박 저장 시설(50평)을 만들고, 노는 땅을 빌려 재배 면적을 1만5000평으로 늘렸다.

그리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공해 농법을 채택했다. 병충해를 예방하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밭에 키토산(게.가재 껍데기에서 추출한 성분)을 뿌렸다. 생산한 호박은 7~8㎏짜리 한 개에 1만5000원씩 받고 인터넷 사이트(camsemgol.com)를 통해 판매한다. 가공식품 판매까지 합쳐 연간 매출이 2억원에 이른다.

최씨는 호박 재배 방법과 저장 기술을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호박 작목반을 만들었다. 작목반 한상범(60)씨는 "호박은 병충해가 적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며 "볼품없는 호박이 '효자'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마을 70여 가구 중 호박 농사를 짓는 15가구는 시장에 호박을 팔거나 가공용으로 최씨에게 넘겨 연간 4억원의 소득을 기록하고 있다.

◆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최씨는 2003년 호박 가공 시설(50여 평)을 차린 뒤 가공식품 개발에 나섰다. 못생겨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호박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부인 이혜란(47)씨와 호박즙.호박국수.호박죽 등을 팩으로 만들어 온라인 판매를 한다. 그는 3년째 1박2일짜리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시민에게 생산현장을 직접 보여줘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호박 따기, 호박죽.국수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지난해 1200여 명이 찾았다. 2001년 농업 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그는 "호박이 익어 가는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김방현 기자

◆ 맷돌호박=맷돌처럼 둥글납작하며 애호박에 비해 성숙하다고 해 늙은 호박이라고도 부른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주황색 빛깔이 나고 겉이 단단해진다. 잘 익은 호박일수록 당분 성분이 많다. 고혈압.당뇨는 물론 출산한 여성의 부기를 빼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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