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성룡 기자
첫입에는 복고풍의 단맛이 물씬하다. 배경은 1969년 전라도 어느 항구마을.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 서울에 있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여름 한철 아이스케키 장사에 나서는 얘기다. 아이스케키 하나, 달걀 한 알이 귀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는 부모 세대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때 그 시절'을 동화로만 그리지 않는다.
때로는 얼음처럼 냉혹한 비극도 어른거린다. 이런 세상을, 부재한 아버지만 좇지 않고 또래 친구들의 우정으로 커 가는 성장담으로 그려낸 점에서 영화는 현재형의 감동을 준다. 뭐니뭐니 해도 돋보이는 것은 주.조연을 맡은 두 아역배우의 진솔한 연기다.
박지빈(11.(上))은 지난해 '안녕 형아'로 해외 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명실상부한 아역스타. 장준영(12.(下))은 '바람난 가족'에서 문소리.황정민 부부의 아들로 나왔던 그 배우다. 지빈이는 이번 영화에서 서울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엄마 몰래 아이스케키 통을 둘러메는 주인공 영래로, 준영이는 영래에게 나름의 장사 노하우를 알려주는 고아 소년 송수로 등장한다. 흙 묻은 달걀에도 걸신들린 듯 달려드는 가난한 시절의 아이들인데도 친구의 꿈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건네주는 우정을 발휘한다.
경력이 짧지 않은 두 배우에게도 이번 영화의 배경은 퍽 낯설었다. 둘은 물론이고 30대 초반인 감독 역시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인 탓이다.
몸이 힘든 장면도 적지 않았다. 지빈이는 "비오는 날 살수차로 물 뿌리며 찍은 장면"이 삭제된 게 제일 아쉽다. 물론 이렇게 힘든 촬영 사이에는 스태프.출연진의 '형들'과 야구하는 재미가 쏠쏠했단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익히는 데도 공이 많이 들었다. 대본 외에 남도 창(唱)이나 사투리 구연대회 원고로 '과외'를 받았다. 소리 한 자락을 청하자 "지금은 다 까먹었다"는 게 공통 답변이다. 개봉이 다가오면서 그들만의 걱정도 있다. 다른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의 반응이다. "다들 꼭 본대요. 바가지 머리 보면 실망할 거라고 말했는데도."(지빈) "난 땜통 머리만 아니어도 괜찮을 텐데."(준영)
연기를 계속하고픈 마음은 둘이 똑 같다. 다만 지빈이는 "가수", 준영이는 "법관"도 하고 싶다. 지빈이는 이번 영화에 엄마로 출연한 신애라와 함께 5곡의 노래를 새로 불러 영화음반에 녹음했다. 방학인 요즘 지빈이는 드럼.기타.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준영이는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내 마음의 풍금'의 이영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신작'여름이 준 선물'에서 동네 할아버지와 색다른 우정을 쌓는 아역 주인공을 맡았다. 그런데도 둘의 얘기는 약속이나 한 듯 '아이스케키'로 돌아온다. "곡성(야외 촬영세트가 지어진 곳)에 다시 가고 싶어"(준영) "나도. 아이스케키2 찍으면 안될까."(지빈) 이 여름'아이스케키'의 추억은 영래와 송수만의 것이 아닌 듯했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