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영화 '아이스케키' 박지빈·장준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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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진=김성룡 기자

'아이스케키'(감독 여인광.24일 개봉)는 그 옛날의 아이스케키처럼 향신료의 단맛과 얼음의 찬 맛이 차례로 나는 영화다.

첫입에는 복고풍의 단맛이 물씬하다. 배경은 1969년 전라도 어느 항구마을.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 서울에 있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여름 한철 아이스케키 장사에 나서는 얘기다. 아이스케키 하나, 달걀 한 알이 귀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는 부모 세대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때 그 시절'을 동화로만 그리지 않는다.

때로는 얼음처럼 냉혹한 비극도 어른거린다. 이런 세상을, 부재한 아버지만 좇지 않고 또래 친구들의 우정으로 커 가는 성장담으로 그려낸 점에서 영화는 현재형의 감동을 준다. 뭐니뭐니 해도 돋보이는 것은 주.조연을 맡은 두 아역배우의 진솔한 연기다.

박지빈(11.(上))은 지난해 '안녕 형아'로 해외 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명실상부한 아역스타. 장준영(12.(下))은 '바람난 가족'에서 문소리.황정민 부부의 아들로 나왔던 그 배우다. 지빈이는 이번 영화에서 서울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엄마 몰래 아이스케키 통을 둘러메는 주인공 영래로, 준영이는 영래에게 나름의 장사 노하우를 알려주는 고아 소년 송수로 등장한다. 흙 묻은 달걀에도 걸신들린 듯 달려드는 가난한 시절의 아이들인데도 친구의 꿈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건네주는 우정을 발휘한다.

"정말 친한 친구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동감하는 지빈이와 준영이는 실제로도 자칭 "소친(소중한 친구)". 지난해 KBS 단막극'도깨비가 있다'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친해져 이제는 "군대도 함께 가자"는 사이다. 초등학교 6년생 같은 또래니까 그러려니 싶지만 연기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라는 점이 남다르다. 서로 가장 연기를 잘한 장면을 묻자, 준영이는 단박에 "지빈이가 한 모든 장면"이라면서 "정말 따라 배우고 싶다"고 한다. 지빈이도 마찬가지. "준영이가 입에 달걀을 물고 기찻길에서 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볼 때마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요. 눈빛으로 연기를 한다, 진짜 배우로구나 생각했어요."

경력이 짧지 않은 두 배우에게도 이번 영화의 배경은 퍽 낯설었다. 둘은 물론이고 30대 초반인 감독 역시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인 탓이다.

"처음에는 아이스케키가 먹는 건 줄 몰랐어요. 여자애들 치마 들추는 걸로 알았죠.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정말로 아이스케키가 5원이었느냐고."(지빈) 그래도 저마다 인물의 감정을 소화하는 비결이 있다. 최종 편집에서는 삭제됐지만, 준영이는 극중 동생이 입양 가는 장면에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울었단다. 속으로 '친형이랑 헤어진다면 얼마나 슬플까'생각했다는 설명이다.

몸이 힘든 장면도 적지 않았다. 지빈이는 "비오는 날 살수차로 물 뿌리며 찍은 장면"이 삭제된 게 제일 아쉽다. 물론 이렇게 힘든 촬영 사이에는 스태프.출연진의 '형들'과 야구하는 재미가 쏠쏠했단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익히는 데도 공이 많이 들었다. 대본 외에 남도 창(唱)이나 사투리 구연대회 원고로 '과외'를 받았다. 소리 한 자락을 청하자 "지금은 다 까먹었다"는 게 공통 답변이다. 개봉이 다가오면서 그들만의 걱정도 있다. 다른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의 반응이다. "다들 꼭 본대요. 바가지 머리 보면 실망할 거라고 말했는데도."(지빈) "난 땜통 머리만 아니어도 괜찮을 텐데."(준영)

연기를 계속하고픈 마음은 둘이 똑 같다. 다만 지빈이는 "가수", 준영이는 "법관"도 하고 싶다. 지빈이는 이번 영화에 엄마로 출연한 신애라와 함께 5곡의 노래를 새로 불러 영화음반에 녹음했다. 방학인 요즘 지빈이는 드럼.기타.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준영이는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내 마음의 풍금'의 이영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신작'여름이 준 선물'에서 동네 할아버지와 색다른 우정을 쌓는 아역 주인공을 맡았다. 그런데도 둘의 얘기는 약속이나 한 듯 '아이스케키'로 돌아온다. "곡성(야외 촬영세트가 지어진 곳)에 다시 가고 싶어"(준영) "나도. 아이스케키2 찍으면 안될까."(지빈) 이 여름'아이스케키'의 추억은 영래와 송수만의 것이 아닌 듯했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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