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청와대의 미국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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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한국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북한 미사일 문제에서) 미국이 제일 실패한 나라"라는 발언으로 집권당과 야당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장관이 '그 정책은 미국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하면 안 되느냐"라며 이 장관을 옹호했다.

한국의 장관은 당연히 미국을 비판할 수 있다. 미국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비판받는 데 익숙하기도 하다. 그런데 영국.호주.일본의 장관들도 때로 미국을 비판하지만 그것이 대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치진 않는다. 문제는 한국 장관이 미국을 비판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다.

서울의 최고위 관료들은 북한 핵 문제를 다루면서 평양의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려고 시도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에 돌을 던지기 전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에 대한 비판은 종종 부정확한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11월 12일 로스앤젤레스의 국제문제협의회(WAC)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선제공격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가진다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과, 이어 칠레 산티아고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는 주장이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미국이 무력 사용을 암시했으나 한국의 강력한 거부로 "한국이 반대하는 한 한반도에 전쟁은 없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암시한 적이 없다. 또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외교적 방법 외에 다른 옵션을 고려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려는 것을 막았다고 계속해서 주장해 백악관을 곤혹스럽게 했다.

둘째, 미국의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이 한국에 위협이 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신뢰를 불필요하게 훼손하고, 양국이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달 유엔 안보리에서 한국은 6자회담 참가국 중 영향력이 가장 미미했다. 한국은 대북 전략을 수립하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비난하는 데 급급했다.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조차 워싱턴을 비난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간파했는데도 말이다.

셋째,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것은 청와대에도 도움이 안 된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북한에 점점 회의적이다. 구체적인 정책 없이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도 국민에게 지지 받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을 비난하는 것보다 한.미가 일관성 있는 대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효과적이다.

넷째, 한국이 미국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강경 정책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만류를 무시하고 지난달 5일 실시한 미사일 시험 발사는 북한이 강경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압박에 즉흥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의 다음 계획은 핵 실험일 것이다.

다섯째, 한국의 대미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 지도자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노 대통령과 이 장관은 사실 미군 재배치,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어려운 현안 앞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9월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아무쪼록 양국 정상 간의 논의가 전략적이고 생산적이기를 기대한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