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아닌 「인간」을 가르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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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서울K고 1학년 남자 우등생과 경기도 수원Y여고 1학년 연극반 여학생의 두 죽음을 보면서 충격과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누가 두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누가 이 학생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신문은 급우의 질시와 선배의 시샘이 비극을 불렀다고 보도했다.
지난달29일 자살한 서울K고 1년 김모군(16)은 『줄곧 1등을 해오자 저를 보는 급우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가 없었다』는 유서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자기가 공부한 것이 아니라 공부가 날 공부하도록 시켰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달2일 학교앞 빌딩 화장실에서 목 졸려 숨진 수원Y여고 1년 민모양(16)은 연극반 선배인 이 학교 2년 박모양(16)이 연극주연 배역이 후배인 민양에게 돌아가자 이를 시샘, 살해한 후 32일 만인 4일 경찰에 검거됐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급우에 대한 질시와 연극주연을 후배에게 빼앗긴 시샘이 이번 사건의 동기였다는 점에서 급우애 없는 교실의 서글픈 현실 앞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생활세계와 무관한 문제의 정답만을 가르치는 입시교육의 결과는 지식전달·암기수업에 익숙한 수동적 학생이나 삶의 방관자를 낳고 있으며 이는 곧 실망과 포기, 그리고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로 연결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학교, 우리의 교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 속의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낳고 있기에 두 학생의 비극을 겪어야 할까.
학교교육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을 점수로 서열화하는 학벌위주의 신분사회가 많은 학생들에게 자포자기의 패배감을 안겨줘 성적비관 자살이라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교육이사회적 지주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 다. 사회·정치 현상을 뒤따라가는데서 빚어지는 교육철학 부재는 교육정책집단이나 교육행정가들의 사회 종속적 또는 정치적 편승의 흔들리는 교육관에서 극복하지 못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공부가 날 공부시켰다』『돈이 없어 학교에서 무시당한다』는 우등생 김군의 비탄스런 유서는 죽음이 남긴 외마디가 아니다. 「점수」만을 강요하는 학교교육과, 학교에까지 파고든 과소비의 물질만능주의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우리교육과 사회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연극주연 배역을 못받아 후배를 「시샘살해」한 사건 역시 더불어 사는 인간성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단면을 비쳐주는 팽배한 이기주의를 경계해야할 자성을 던져준다.
이 두 사건에서 교육과 사회는 교육의 본질과 사회의 가치관을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하는가 하는 물음 앞에 신중히 나서야한다. 교육적 빈곤 속의 교육팽창이 엄청난 「교육 인플레이션」의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지 않은가. 이제 사회는 학교교육이 성적보다 인간잠재력과 인간성 회복의 전인교육에 다다르도록 사회가치관의 재정립을 위한 범국민 교육운동에 나서야 할 때다.
성주엽 <서울성북구정릉3동 651의2호 23통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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