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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사 120평 수원시장 84평 … 방 커야 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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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총 62.7평 규모의 강릉시장실. 집무실(24.6평)에 응접 세트를 갖추고도 접견실(아래 사진) 등 부속 공간(38.1평)을 두고 있다. 올해 청사가 크다는 이유로 교부금을 깎인 강릉시는 시장실 등을 줄이고 있다. [강릉시 제공]

시장.군수.구청장의 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은 널찍한 집무실이 있는데도 별도의 접견실을 만들고 전용 화장실.샤워실.휴게실을 두는 관행을 고집한다. 시.도의원들도 '내 방'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건축가 김영섭씨(김영섭+건축문화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단체장실 대다수가 이용 빈도에 비해 지나치게 넓고 주민 편의와도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 기초단체 82%가 기준 어겨=행정자치부의 조례 표준안에 따르면 시.군.구의 단체장실(접견실 등 부속 공간 포함)은 약 30평이 적정 규모다. 광역시.도의 경우 50평가량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전국 지자체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결과 16개 광역시.도의 68.8%(11곳), 230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의 82.2%(189곳)가 이 기준을 어기고 있었다.

광역단체장 16명 중 가장 넓은 방을 쓰는 사람은 전북도지사다. 120여 평에 이르는 도지사실은 집무실(57.5평), 비서실(38평), 접견실(21평), 휴게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형 원탁이 있는 집무실은 주로 회의에, 접견실은 손님을 만나는 데 쓴다"고 강웅철 전북도청 공보관은 밝혔다.

반면 가장 좁게 쓰는 광역단체장은 강원도지사(38평)다. 원래 56평이던 도지사실 중 18평을 보좌관 5명의 사무실로 내줬다.

230개 기초단체 중엔 경기도 수원시장실이 가장 넓다. 집무실.접견실.부속실을 합해 모두 84평이다. 수원시는 올 초 청사 별관이 완공되자 체육청소년과 등 소속 부서가 나간 공간을 이용해 시장실을 늘렸다. 가장 좁은 단체장실은 충남 당진군수실로 16평이다.

민선 자치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청사를 지은 기초단체 42곳 중 부산 동구를 제외한 41곳이 행자부 기준을 초과한 단체장실을 쓰고 있다. 42곳의 단체장실은 평균 51.3평으로 95년 이전 지은 청사들의 단체장실(39.3평)에 비해 30.4% 넓다. 부시장 등 부단체장실 역시 기준을 넘기는 마찬가지다. 취재팀이 조사한 75개 부시장실은 평균 25.5평(행자부 기준 17평), 155개 부군수실.부구청장실은 21.1평(기준 11평)이다. 전국 단체장실과 부단체장실을 모두 합하면 1만6500여 평으로 주차장.문예시설을 뺀 지자체 청사 연면적(96만여 평)의 1.8%를 차지한다.

◆ 방 커야 일 잘해◆ ="시장을 만나겠다고 밀고 들어오는 민원인들을 복도에 세워 둘 수 없어 집무실을 넓혔습니다"(박흥식 수원시 공보담당관). 민선 이후 단체장을 찾는 민원인이 늘어 어쩔 수 없이 집무실을 키우거나 접견실.부속실을 따로 둔다는 것이다.

단체장이 참석하는 크고 작은 회의를 대개 단체장실에서 여는 것도 방을 넓히는 이유다. 김학용 경남 진주시청 공보팀장은 "전체 68.8평의 시장실 중 개인 공간은 20평에 불과하다"며 "대신 각 층에 흩어진 다른 회의실이 불편해 시장실을 회의실 삼아 쓴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축 전문가들은 '공간의 낭비'라고 지적한다.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건축학)는 "단체장 방은 일선 공무원이나 민간기업 임직원의 사무공간에 비하면 지나치게 호사스럽다"며 "주민 자치 정신과 상반된 경직된 관료 문화가 엿보인다"고 꼬집었다. 성건경 대한건축사협회 홍보위원장은 "이름 있는 대기업이나 외국 관청에선 공용 회의실을 넓게 쓰지, 임원실.기관장실은 크게 짓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 등 대기업 계열사 사장실은 20평 남짓이다.

행자부 기준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지자체도 많다. 12월 완공을 앞둔 경북 포항시청사는 시장실과 부시장실의 설계 면적이 각각 78평, 50평에 이른다. 안상찬 공보담당관은 "시장실에서 근무하는 직원 8명의 사무공간까지 따지면 행자부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행자부는 그러나 '중앙부처 기관장실과 똑같이 지자체장실 면적도 비서실.접견실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확인했다.

◆ 의원들도 "내 방 달라"=단체장을 견제해야 할 시.도의원들도 넓은 집무실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올 6월 현 청사 옆에 의원회관을 짓기 위해 설계용역비 2억5000만원을 추경예산안에 반영했다. 30여억 원의 건축비가 드는 의원회관에 의원당 약 10평씩 의원실이 들어선다.

취재팀이 확인한 속기록에 따르면 반대 의견을 낸 의원은 47명 중 2명이었다. 현영희 시의원은 "시민 의견 수렴도 없이 '독방'을 고집하는 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지난달 시청 별관 7, 8층을 고쳐 시의원 106명 전원에 8평의 '연구실'을 제공했다. 리모델링과 집기 구입에 46억여 원의 예산을 썼다. 대전.광주.전남.전북.경남 등도 이미 의원 개인실을 마련했다.

취재= 허귀식.천인성 탐사기획부문 기자, 임슬기 대학생 인턴기자. <제보=deep@joongang.co.kr> 02-751-5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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