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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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틀간의 몰타정상회담을 끝내면서 부시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은 동서냉전시대의 종식과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새로운 협력시대」 의 개막을 선언했다.
세계사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는 매우 미묘한 시기에 열렸던 이번 지중해 함상회담은 1945년이래 세계를 양분했던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평화공존에 바탕을둔 세계 질서의 재편작업에 초강대국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비록 특정문제에 대한 가시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미소가 화해의 정신에 입각해 세계문제의 포괄적해결에 접근하기로 의견일치를 본것은 이번 회담의 성과로 보여진다.
예컨대 가장 큰 주목을 끌었던 동구의 대변혁에 대해 부시는 「미소가 유럽의 분단을 극복하고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는 입장을 표명했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안보에 위협을 초래하지 않는한 동구개혁을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
이같은 기본인식이 상호 신뢰의 바탕위에서 확산된다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힘입어 개혁운동을 펼치고있는 동구 각국은 보다 폭넓은 「선택의 자유」 를 부여받게 되는 셈이다.
군축문제에 관해서도 미소는 이미 전략 핵무기의 50% 감축을위한 협정을 내년 6월 정상회담에서 마무리짓기로 시간표를 짜놓았고, 나토와 바르샤바 양대 군사동맹체제에서 앞으로 군사적 성격을 희석시키고 정치적 성격을 짙게하는 기구로 만들자고도 했다.
미소간의 경제협력 문제도 큰 진전을 보여 소련이 이민제한법을 철페하는 댓가로 미국은 소련에 최혜국대우를 부여할 것을 제의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는 부시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구체적 증거가 될 것이다.
양국은 해군력 감축과 엘살바도르등 중미지역 분쟁에 관해선 이견을 보였지만 동서화해의 상징적인 조치로 2004년의 올림픽을 베를린에서 개최하도록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이 끝난후 양국은 이번 회담이「생산적이고 실질적이었다」(미),「이제 냉전시대는 끝났다」(소)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가까이 세계를 지배해왔던 얄타체제가 몰타에서의 미소 정상들의 일시적인 합의나 선언 한마디로 끝날 수는 없는문제다.
지금은 세계에 대한 미소같은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있는 세력권의 다변화시대이며 동구 각국의 변혁속엔 적지않은 경계또는 위험요소도 내포돼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결국 가강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불신과 대결체질에 젖어왔던 동서양진영이 진심으로 서로를 선뢰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데 힘써야한다는 점일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위적인 「새로운 구도」를 설정한다는 것은 기존 구도의 와해만을 의미하며 대안없이 기존 질서만 흔들어놓은 것은 예기치 않은 전쟁이나 재난의 가능성만을 초래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리는 오랜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강대국 주변의 약소국들이 겪어야했던 고통과 재난을 염두에 두면서 냉전구도의 와해과정이 또다른형태의 고통을 주변국에 주지 않도록 한국을 포함한 냉전시대의 피해국들은 경계의 눈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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