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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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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정치가 이대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뭔가 달라져야지 정치가 그냥이대로 나가다가는 큰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의 심각한 경제위기도 실은 그 원인이 정치불안에 있고,도적이 들끓고 폭력이 판을치는 세태도 궁극적으로는 정치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아직도 임기가 3년이나 남았으니 이런 세월을 앞으로 3년이나더 견뎌야하느냐, 아직도 임기가 2년이나 남았으니 이런 정치판을 2년이나 더 견뎌야하느냐는 소리도들린다. 지난번 헌법개정때 왜 국회해산조항을 삭제했는지 안타깝다는 말도 나오고 백담사의 전대통령이 뭔가 치명적인 과거사를 터뜨려 정계의 모모하는 인물들을 한꺼번에 보내버리면 좋겠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나날이 커지고 정국표류·정치부재에 대한 위기의식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됐는가. 왜 정치가 이런 말을 듣게 됐는가.
여도 야도 주도세력이 돨수 없는 여소야대의 4당체제,정당들의 지나친 당리당략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가 이렇게까지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면 리더십의 부족,지도력의 빈곤에 가장 큰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한다. 당연히 리더십을 발휘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사람들로부터 그런 것이 나오지 않고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5공청산이 왜 안되는가.필요한결단이 없기 때문이다. 왜 정치가 방향을 잃고 이견과 갈등만 노츨하는가. 방향을 제시하고 이견을 조정할 리더십이 여·야·정부 어느쪽에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챙기고 조정하고 설득하고 독려하고 상을 주고 벌을 주고 필요할때 결단을 내리는 리더십이 있어야 나라에 중심이 잡히고 정치도 방향을 잡아나갈수 있다.
어려운 경제의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근로자에게 좀 참으라고 설득할수 있는「힘」 이 있어야하고 치안문제가 심각하면 경찰을 독려해 더 열심히 뛰게 만들 「힘」 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힘」 을 발휘할 리더십이 없음으로 해서 갖가지 우려할만한 현상이 사회 도처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요즘 매일처럼 볼수있는 무규범상황의 확산도 그런 예일 것이다.민주화 추진과정에서 사회 분야마다 제몫을 주장하는 시비가 끊임없이 벌어지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보안법위반이라고 하면 보안법은 악법인데 지금 그걸 적용하면 5공때와 무엇이 다르냐는 항변이나온다.
전교조는 불법이라고 하지만 승복않는 숫자는 아직도 엄청나다. 전노협·전농협·전대협과 관계된 일,통일과 이념과 관계된 일,집회와 시위와 관계된 일…하다 못해 의료보험에 관계된 일까지 시비는 있어도 판정기준이 맥을 못추고 있다. 상대방도 승복할수 있어야 기준이 기준노릇을 할텐데 상대방은 승복않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설득하지도 못하고 새기준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미 오래되었다. 자기분야에 말썽없기만 바라고 결정은 위에만맡겨 결과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돼 있다. 임기가 끝나면 그 뿐일 6공정부를 위해서 자칫 잘못하면 6공청문회에 나갈지도 모를텐데 왜 열심히 하고 핏대를 올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분위기가 관청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가 되어서인지 콩가루 집안이어서인지 부처간에 말이 다르고 요인간에 주장이 엇갈리는 현상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기강을 세우고 장악하고 끌고나가는 리더십은 별로 볼수 없다.
경제가 위기라는 우려가 높고 민생치안이 큰 일이라는 아우성이 벌써 언제부터인데도 정부나 정치권에서 신뢰할만한 대책이나 무거운 책임감을 보기 어렵다.
이처럼 오늘의 난국은 정치의 리더십 빈곤에 가장 큰 원인이 있으며,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것은 리더십의 재건,정치의 복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리더십이 나오고 누가 그것을 발휘해야 할것인가.
지도자가 평지돌출할수는 없는 일이고 없던 지도력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물음에 대해서는 결국 현실정치를 이꼴고 있는 1노3김이 회답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계속 이런 정치상황을 끌고 갈 것인가, 뭔가 결단을 내릴 것인가 양단간에 결판을 내야 하며, 그 회답에 따라 그들의 정치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노대통령은 지금까지처럼 「물」 소리를 들으면서 청산과 개혁에 관해 결단을 미루고만 있을 것인지,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문제에 정면으로 부닥쳐 개혁과 수술과 정비를 할것인지 결심해야 한다.
3김씨 역시 기로에 섰기는 마찬가지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90년대까지 지도자로·남을수있을지, 여전히 구야당적 의식에 안주하다가 무대에서 퇴양할지 그 선택은 지금 하기에 달렸다.
1노3김 모두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는 하기 어렵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작 20%대의 지지도 못받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체제의 변혁이 진행되는 이 역사적 격동기에서 나라가 중심을' 못잡고 표류만 하고있는 것은 중대한 사태며,이시절 지도자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필요한 리더십이 나와야 할곳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 그 공백을 채울 수밖에 없고 그것은 지도자나 우리사회에 다같이 고통스런 대가의 지불을 강요할 것이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이대로는 안되는데도 이대로만 가다가는 어떤 결과가 올것인지 거듭 생각해야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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