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가고·전력부족…국민불만고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일 새벽 발생한 필리핀 쿠데타는 코라손 아키노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86년2월이래 6번째다.
이번 쿠데타의 주모자가 누구인지 아직까지는 정부군과 반란군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고있는 상황이어서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있다.
그러나 코라손정부는 이번 쿠데타의 배후에 그레고리오 호나산 전대령(41) 이 포진해있을 것으로 「확신」 하고있다.
호나산은 지난 87년8월28일 2천5백명의 병력을 동원,대통령궁과 라디오·TV방송국을 공격하려다가 53명외 사망자와 3백명이상의 부상자를 낸 불발쿠데타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후 도피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마닐라만에 정박중인 해군선에 유배돼있다가 지난해4월 탈출,현재까지 계속 도피생활을 해오고 있다.
호나산은 지난주초 한 지방신문에 인터뷰를 자청, 『아키노정부는 부정과 부패의 무정부상태』 라며『이런 상태로는 활력있는 신정부건설이 불가능하다』고 말해 또한차례 쿠데타를 기도할 의사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바있다. 더욱이 이번 쿠데타에 해병2개중대 병력을 이끌고 출동한 성명미상의 한 대령이 호나산과는 사촌간이어서 쿠데타의 실질적인 주모자가 호나산이라는 가능성을 크게해주고 있다.
반란군측은 이번 쿠데타에 해병과 일부 육군등 약2천명이 가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실제 T28훈련비행기까지 동원돼 말라카냥 대통령궁에 3차례나 폭탄을 투하하는등 그세력이 앞선 5차례의 불발 쿠데타에비해 대규모인 것은 분명한것 같다.
또 육군중령출신으로 현 카가얀주지사인 루돌프 아기날도는 『배루손지방에서는 반란군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혀 반란군의 세력이 여느때와는 달리 강력한것 같다.
이처럼 비교적 광범의한 지지층을 반란군측이 갖게된데는 코라손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필리핀정부는 최근 휘발유와 가정연료용을 포함한 석유제품가격을 21∼34% 인상,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가뜩이나 올들어서만 13%라는 고 인플레에 시달리고 전력의 절대부족과 대중교통체제의 악화로 불만이 고조돼있는 국민들에게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인상이라는 「불」 을 끼얹어준 셈이다.
이 때문에 필리핀은 최근들어 하루도 조용할날이 없었다. 미군기지에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미군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미·반정부 시위를 연일 벌이는가하면,공립학교교사들을 포함한 공무원들까지 파업에 가담하고있는 판이다.
이런 국내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기위해 코라손대통령은 올들어서만 브루나이·일본·서독·프랑스·벨기에·캐나다·미국등을 순방하며 차관등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구걸외교」 를 벌였다.
그러나 이에따른 효과가 별로없자 강경 노조지도자들은 『코라손은 더이상 「우아한」시간만을 보낼수는 없다』며 현실타개를 위한 노조대표들과의 담판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같은 국내정정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이번 쿠데타가 코라손 집권이후 발생한 앞서의 5차례불발 쿠데타와 마찬가지로 정부전복에는 실패할것이 거의 확실하다는게 현지 외교 소식통들의 진단이다.
국내적으로는 20년 독재의 「철권통치」를 해왔던 마르코스를 축출하는 여론조성에 결정적 기여를했던 하메이 신추기경등 필리핀국민들의 「정신적」지도자가 『헌법에 의해 적법하게 구성된 아키노정부에 충성할것』 을 「간절히」 호소하고있고,군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라모스국방장관과 데빌라참모총장 또한 코라손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원조의 열쇠를 쥐고있는 미국이 아키노정권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음을 재천명하고,만약 아키노정권이 쿠데타로 붕괴될 경우 원조를 즉각 중단하겠다는 태세를 갖추고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코라손정부가 경제난국을 슬기롭게 넘기지 못할 경우 제7,제8의 쿠데타 기도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수 있다. <이춘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