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질서」개편계기 될 듯|미·소 정상회담 무슨 얘기 오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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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의 동구격변이 없었더라도 l2월2일과 3일 지중해 몰타근해의 함상에서 열리는 미소 정상회담의 상징적 의미는 나름대로 매우 큰 것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두 강대국의 영향력과 두 나라의 내부상황이 90년대의 문턱에 이르면서 과거와는 현저하게 다른 양상으로 흘러오고 있던 터였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이래 세계 도처에서 행사해온 세계지도자 역할을 자의였건 타의였건 급격히 축소, 곧 유럽통합을 감내해야 하는 입장으로 물러서 왔다. 소련은 외부세계에서 영위해온 절대 지배권은 고사하고 내부 연방의 과거와 같은 운용 자체마저 동요를 경험해오고 있는 형편이다.
각각의 입장은 다르지만 이같은 기본적 변화상황 아래서 지난 7월 부시의 제의에 의해 성사된 정상회담의 당초 목적은 두 나라 지도자가 우선 비공식적인 회동을 통해 상호간의 인지·탐색·이해를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동베를린 장벽 제거로 상징되는 동구 대변혁으로 인해 정상회담의 의미가 크게 격상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회담이 지나간 40여년간의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고 특히 냉전시대에 대한 최종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을 표명하고있다.
회담 당사자인 부시는 일단 지나친 기대감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유럽주둔군감축에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들을 지나친 과장이라고 일축하고 놀랄만한 결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유럽, 나아가 국제질서를 새로 가름하는 깜짝 놀랄 합의가 없을지도 모른다. 전후 얄타회담 등의 경우와 달리 어차피 두 나라가 더 이상 그른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이다. 부시는 이번 지중해 회담이 유럽장내에 관한 타협의 장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회담은 다만 동구의 개혁과 민주화 과정을 촉진시키는 목적에 활용될 것이라 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 특히 미소의 새로운 책임과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어디까지나 외교적 수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자신의 영향권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 상황을 소련이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지 미지수인 마당에 부시로서는 노골적으로 이 지역 장래 문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팔목을 걷어올리고 대드는 자세를 취하는 인상을 모스크바에 줄 수는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최근 상황과 관련해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해 즐거워하거나 동구에 대해 자본주의 수출을 시도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경고한바 있다. 그러나 회담의 형식이나 참석자의 처신에 관계없이 이 회담이 유럽에 미치는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지대 할 것이라는 점은 부인될 수 없는 것 같다.
동구장래와 관련해 부시는『이 지역의 새로운 향배가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 고르바초프와 토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개진했다.
한편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29일 회담의 제5개항을 설명하면서 동구문제에 관해 흥정도, 한계설정도 없음을 재확인하면서 미국이 분명히 하고자하는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첫째『이 지역의 정통성과안정을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만이 유일한 길』이며, 둘째『계속적 개혁에 대한 강압적 저지와 방해는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스런 행동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부시는 동구의 지속적 개혁을 위한 고르바초프의 다짐을 요구하겠다는 자세로 풀이된다.
동구민주화가 확대되는 경우에 제기될 수 없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 및 나토의 장래, 그리고 이와 관련한 유럽 군사력 감축문제 등은 동서간의 가장 근본적인 현안이면서도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당장 구체적인 협의는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피차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이며 각기 동맹과의 협의가 있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시는 미소 정상회담 후 브뤼셀의 나토 특별회의 자리에서 회담내용을 브리핑하겠다는 조심스런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유럽배치 군사력 및 동맹체제 등에 관한 새로운 구상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는가 하면, 부시도 2차 대전직후 소련공산주의 팽창에 대한「봉쇄정책」을 수립하는데 핵심역할을 맡았던 조지 케넌 등 정부내의 외교전문가들과 매일 회의를 벌이면서 회담준비를 가짐으로써 유럽장래문제에 관한 폭넓은 의견들이 교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미소 정상회담이주로 군사관계에 중점을 두어왔던데 비해 이번 정상회담은 특히 미소 양자관계에 있어 경제회의라는게 특징이다. 경제협력을 주의제로 보고 있는 입장은 모스크바 쪽이 더욱 분명하다.
미국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및 글라스노스트정책이 성공해 제도화되기를 희망, 장기간의 정책검토 끝에 이를 적극 지원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 이 같은 정책검토 후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은 소련경제상황을 설명 받고, 미국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시가 준비한 대소 경제지원선물 중에는 관세감면 등의 최혜국 대우, 하이테크 지원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 졌다.
그러나 회담에는 마찰적 요소도 적지 않다. 특히 엘살바도르·니카라과 등 라틴아메리카의 좌익세력에 대한 소련의 무기공급에 대한 미측의 심각한 문제제기가 예상된다 .베이커 국무장관이 29일 모스크바에 대해『냉전유물을 포기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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