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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피트 높이에 걸린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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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농구 경기의 골을 '바스켓'이라고 한다. 1891년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농구 경기를 고안하면서, 복숭아 수확용 바구니를 10피트(약 3m5㎝) 높이의 체육관 발코니에 걸어 놓고 거기 공을 던져 넣게 한 데서 유래한다.

지금도 변함없는 10피트 높이에 걸린 바스켓. '림(Rim)'이라고 불리는 골의 테두리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까마득하면서도 아련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을 갖게 된다. 10피트는 마치 농구가 가진 어떤 꿈, 마음속에 간직한 소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을 '드림팀'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꿈의 팀'이다.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패해 동메달에 그친 미국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팀이다.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같은 대선수들이 한 팀에서 뛰는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그 후 프로선수가 주축을 이룬 미국팀을 곧잘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짜 드림팀이 아니라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안다. 1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시작하는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에 출전할 미국팀도 마찬가지. 섀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앨런 아이버슨 등 미국프로농구(NBA)의 간판들이 빠졌다. 그래도 경기력은 세계 최강 수준이다.

미국팀의 평균신장은 2m, 베스트 5로 예상되는 선수들의 몸값 합계는 175억원으로 19억원 정도인 한국팀 베스트 5의 아홉 배가 넘는다. 이들이 지난 시즌 NBA에서 기록한 평균득점은 123점. 15일 미국과 경기하는 한국 선수단은 미국이 전지훈련지에서 중국을 46점 차로 대파했다는 소식에 잔뜩 겁을 먹었나 보다. 코치들은 "30-100으로 지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한다.

한국이 미국을 이기는 것은, 체 게바라가 말한 것과 같은 '불가능한 꿈'일지 모른다. 체가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갖자"고 했을 때의 꿈은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꿈일 것이다. 체의 꿈은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마쳤다. 그러나 한국 농구, 아니 한국 스포츠의 꿈이 비극적인 종말을 선고받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언젠가'에 걸고 싶다.

하지만 꿈은, 특히 스포츠에서의 꿈은 로또와 다르다. 꿈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 씨앗을 뿌려 보살피고 오랜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 성숙한다. 요행도 지름길도 없다. 이 사실을 잠시라도 잊으면, 스포츠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이 되고 만다.

최근 한 대학팀에서 편입시키려는 선수 때문에 농구계가 소란하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이 선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의 여러 클럽에서 뛰었다. 이 선수가 대학에서 뛸 자격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농구협회 관계자가 유럽까지 갔다. 돈을 받고 뛴 경력이 있는지가 자격의 기준이라고 한다.

'당장 프로에서도 통한다'는 이 선수에 거는 대학팀의 기대는 꿈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이름의 대박이고, 선수는 로또다. 최근 농구계에는 미국에서 농구선수로 뛰는 혼혈아를 찾아다니거나 중국에서 동포 선수를 수소문하는 관계자가 적잖다고 한다. 심지어는 몽골 같은 곳에서 키 큰 청소년을 입양해 선수로 키우겠다는 인사도 있으니 대박의 꿈이 그토록 큰 것인가.

네이스미스는 왜 바스켓을 닿을 듯 닿지 않는 10피트 높이에 걸었을까. 그것은 소박한 꿈의 높이이자 땀 흘린 자의 염원이 가서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였을지 모른다. 자신이 고안한 경기가 '네이스미스볼'이라는 이름 대신 바스켓볼로 불리기를 원했던 이 사나이는 대박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허진석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