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인플레 압력 여전" 추가 인상 가능성 남겨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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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의 정책 금리 인상 행진이 2년2개월 만에 멈춰섰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8일(현지시간) 연 5.25%인 기준 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2004년 6월 이래 매번 0.25%포인트씩, 17번 연속 이어진 FRB의 금리 인상 기조가 새로운 분기점에 다다른 것으로 분석된다. FRB는 이날 발표문에서 "주택시장의 완만한 침체와 금리 인상 및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올 초부터 상당히 빠른 속도로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며 금리 동결 배경을 밝혔다.

◆종결 아닌 '일시 중단'=FRB가 금리 동결을 밝혔지만 금융가에선 금리 인상 행진이 끝난 게 아니라 일시 중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으로 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경기 둔화 우려 못지않게 인플레 압력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의 핵심물가 상승률(식품.에너지 제외)은 2.4%에 달했다. 이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이상적인 수치'라고 제시했던 1~2%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FRB도 금리 동결 발표와 함께 "인플레 압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인플레 위험에 대응할 추가 정책의 범위와 시기는 향후의 경제지표에 달렸다"고 여운을 남겼다. 일각에선 9~10월께 또 한 차례 0.25%포인트의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세계 금융시장의 반응도 이런 이유로 엇갈리고 있다. 8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금리 동결 소식에도 불구하고 전날보다 0.41%, 나스닥 지수 역시 0.56% 떨어졌다. 금리 동결이 예고된 '이벤트'인 데다 '미국 경제가 본격 둔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날 유럽 증시는 '미국발 불확실성'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소폭 올랐다. 9일 일본 주가 역시 1.24% 상승하는 등 아시아 증시도 동반 상승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도 등락을 거듭하다 전날보다 3.83포인트, 코스닥 지수는 5.84포인트 각각 올랐다.

외환시장도 이날 관망 분위기가 우세한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4.2원 내린 달러당 959.5원으로 장을 마쳤다.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이준규 과장은 "미국의 금리 동결은 기본적으로 달러 약세 요인이지만 당분간 지켜보자는 입장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금통위 결정에 주목=국내 금융시장의 관심은 이제 8월 콜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 넘어갔다. 대다수 전문가는 최근 국내 경제 상황이 미국과 닮은꼴이라는 점을 들어 '금리 동결'쪽을 점친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책임연구원은 "물가 불안이 심상치 않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식어가는 경기를 고려하면 추가 금리 인상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의 금리 동결 결정도 금통위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경기 진작을 내세운 정치권의 금리 동결 압력도 거세다. 산업자원부도 경기를 감안한 금리정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한은은 인플레 압력이 만만찮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9일 두바이유는 사상 최고인 72달러대에 진입했다. 하반기엔 각종 공공요금 인상도 예정돼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 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온 한은이 과감히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콜금리를 올린다 해도 최근 경제 둔화 상황을 감안해 올해엔 마지막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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