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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보다 먹히는 만능 몽둥이" 선거판 흙탕물 내는 친일몰이

중앙일보

입력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또 ‘친일 몰이’가 시작됐다. 한국 정치사에서 한 때 반공(反共) 프레임이 ‘만능 몽둥이’처럼 쓰인 적이 있지만, 이젠 친일 프레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달 15일 황교익씨(왼쪽)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TV 캡쳐

지난달 15일 황교익씨(왼쪽)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TV 캡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과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사이 갈등의 한 국면도 친일 공방이다. 이낙연 캠프의 신경민 상임부위원장은 17일 라디오에 출연해 황씨에 대해 “일본 음식에 대해서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한국 음식은 그 아류라는 식의 멘트를 많이 했다”면서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러자 페이스북에 “제게 던진 친일 프레임을 이낙연에게 돌려드리겠다”며 “이낙연이 일본통인 줄 알고 있다. 일본 정치인과 회합에서 일본 정치인의 ‘제복’인 연미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본 적 있다. 이낙연은 일본 총리에 어울린다”고 썼다. 황씨는 18일 라디오에서 “미러링(모방 행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에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친일 프레임 공격을 받고 있다. 최 전 원장의 조부가 평강군유진면에서 유진면면협의원을 맡았다는 게 이유다. 일제 시대 지역 유지였던 만큼 친일파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최 전 원장의 증조부도 유진면 면장이었다는 이유로 같은 공격을 받고 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앞서 “최 전 원장은 증조부와 조부의 친일 행각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8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을 방문하여 김호일 회장과 악수를 하고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8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을 방문하여 김호일 회장과 악수를 하고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최 전 원장은 18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했다. 조부가 춘천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강원도 최초의 항일학생운동을 했다는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런 모든 사실을 외면하고 단지 일본강점기에 유지로 살았다는 이유로 저희 조부를 ‘친일’로 몰아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고 물었다. 최 전 원장은 “과거를 소환하고 친일 프레임으로 국민을 가르고 조상의 고된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구태정치는 이제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광복한 지 8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친일 프레임은 강력하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대선국면 등에서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부친이 일본강점기 금융조합 서기로 일했다는 점 때문에 친일 프레임에 걸렸다. 일부 언론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출생지가 일본 오사카라는 점을 부각해 반일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부친이 일본강점기 흥남 농업계장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친일' 공격을 받아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일본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나베’(나경원+아베) 딱지가 붙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친일 프레임은 반공 프레임과 같은 양상으로 작동한다. 친일이든 반공이든 객관적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은데도 ‘나쁘다’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이다. 다시 친일 프레임이 나온다는 건 정치권의 과거지향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문재인 정부가 친일, 반일을 다시 꺼내면서 친일 프레임이 다시 강력하게 작동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는 조국 전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올리는 등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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