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정책기획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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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은 요새 유럽 장래에 관한 시나리오 작성작업에 몹시 분주하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동구사태와 관련해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12월초 미소정상 회담에서 무슨 기??제의를 내놓을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 도상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냉전체제 변화에 대한 미 정책수립을 위해 핵심적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곳은 미국무부 정책기획실로 알려지고 있다. 제임스 베이커 장관의「개인적 두뇌집단」또는「국무부내 소 국무부」로도 불리는 이 기구는 그 특수한 위치와 영향력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비하면 25명의 소규모 조직이다.
정책조정실은 현재 베이커 장관을 위해 세 가지를 주제로 한 유럽전략을 마련중이다. 첫째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등 기존기구들을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적절하도록 개편하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동·서구의 결속방안, 셋째는 미국이 장래 유럽 재편과정에서도 계속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는 방안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나토에 관한 한 부시행정부 입장은 물론 냉전 종식이후의 유럽변화를 처리할 수단으로 지속시킨다는 생각이다.
소련 및 동구권으로부터의 위협감소 여부를 떠나 나토는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은 동맹국간의 갈등해소를 위해서건, 독일 영향력 견제 등을 위해서건 나토는 존속시키되 개편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 정책기획실의 전통은 2차 대전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국무장관 조지 마셜은 약관의 소련전문가 조지 케넌을 불러 유럽회복구상을 마련토록 의뢰했고, 케넌의 정책기획팀은 딘 애치슨, 존 매클로이, 애버럴 해리먼 등 국무부 간부들과 토론 끝에 마셜플랜을 마련했던 것이다.
현재의 정책기획실 책임자는 올해 41세인 데니스 로스, 부실장은 지난여름 냉전에서 서방이 승리했다는 논문「역사의 종언」으로도 이름이 나있는 36세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이다.
이들과 함께 중앙정보국(CIA)소련전문가·경제학자·각 지역전문 외교관, 심지어 환경문제 전문가 등 다양한 두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인적구성으로도 나타나듯이 이들은 국무부 직업관료들과는 다분히 이질적인 존재들일뿐 아니라 베이커 장관에게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간혹 질시와 마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년간의 직업외교관 경력을 다져온 일반 관리들의 눈에는 이들이 아웃사이더들이고 애송이들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베이커 장관은 주요정책 포스트를 외부로부터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맡기고 이들 소 조직만을 싸고 돈 다고 해서 끈질기게 언론 등의 입 초상에 오르내렸고 그 가운데는 이 정책 기획실 팀에 관한 얘기도 심심지 않게 거론돼 왔다.
로스가 워싱턴 생활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로서 처음엔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 때 중동전문가로 정책기획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자문관으로 자리를 옮겨 조지 박사와 베이커를 알게됐다는 것이다.
로스를 팀장으로 한 이 정책기획실이 또다시 유럽재편에 관한 작업을 벌이면서 예전과 다른 애로를 겪는 것은 이제 미국의 힘에 한계가 있고 유럽이 미국의 구원을 호소하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전후에는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가 명백한 적으로 존재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공산주의가 한 쪽으로는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고 있는 유동상태라고 정책기획실 관계자는 작업의 고충을 토로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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