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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내 아들 저소득 장학금, 친구 엄마가 골프용품 샀다"

중앙일보

입력

(기사내용과 관계 없는 이미지)[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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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운동부 학부모, "장학금 대리사용" 의혹

충북 충주에서 저소득층 운동부 학생에게 주는 정부 지원 장학금을 한 학부모가 몰래 사용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충주의 한 고교 운동부 소속 A군(18)의 친모인 이모(44)씨는 8일 “아들에게 매월 40만원씩 포인트 형식으로 나오는 장학금을 다른 학부모가 허락도 없이 2년 넘게 사용했다”며 “자신이 카드를 관리하면서 장학금의 일부분은 아들 친구에게 필요한 스포츠용품을 사주고, 대부분을 골프용품 구입 등 친구의 부모가 썼다”고 주장했다.

A군은 고교 1학년인 201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지원하는 ‘저소득층 체육인재 장학지원 사업’에 선발돼 장학금을 받아 왔다. 이 장학금은 후보자 추천 등 선발 과정을 마친 4월 이후부터 이듬해 2월 정도까지 매월 40만원씩 지급된다.

한해 최대 지원금은 400만원이다. 만 12세 이상은 학생 이름으로 카드를 발급받아 체육용품 등을 살 수 있다. A군이 지금까지 받은 장학금은 900여만 원이다. 이씨에 따르면 장학금 900여만 원 중 A군이 지금까지 사용한 금액은 100여만 원에 불과했다.

피해 학부모 “900만원 중 아들한테 100만원만 써” 

충북 충주의 한 고교 운동부 선수 학부모가 A군의 저소득층 체육인재 장학금으로 올해 사용한 카드 승인 내역 일부. [사진 A군 어머니]

충북 충주의 한 고교 운동부 선수 학부모가 A군의 저소득층 체육인재 장학금으로 올해 사용한 카드 승인 내역 일부. [사진 A군 어머니]

친모 이씨에 따르면 A군은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생활하며 어렵게 운동부 생활을 해왔다. 이후 2018년부터는 아버지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충주에 사는 사촌 형의 보호를 받으며 지냈다. 이혼 후 서울에서 생활해온 이씨는 2019년부터 서울과 충주를 오가며 A군을 돌보고 있다.

A군 측은 다른 학부모인 B씨의 소개로 체육인재 장학금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친구 엄마이며 선생님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B씨가 ‘괜찮은 장학금이 있으니 아들을 위해 신청하는 게 어떻겠냐’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B씨는 A군이 속한 운동부의 선수 학부모이자,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교무실무사였다.

이씨는 “B씨가 마치 학교 선생님인 것처럼 중학교때부터 아들을 잘 돌봐줬다는 말을 하면서 장학금 얘기를 꺼내 처음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B씨가 이내 황당한 제안을 했다는 게 이씨 측의 주장이다. 자신이 장학금 정보를 줬고,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내 아들과 나눠쓰면 어떻겠냐”는 얘기였다. 이씨는 “아들과 수년간 떨어져 얼굴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며 “당시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촌 형과 얘기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장학금 카드 대신 수령…골프·사무용품점 다수 사용 

충북 충주의 한 고교 운동부 선수인 A군이 체육인재 장학금으로 2020년 구입한 체육용품 일부. [사진 A군 어머니]

충북 충주의 한 고교 운동부 선수인 A군이 체육인재 장학금으로 2020년 구입한 체육용품 일부. [사진 A군 어머니]

A군은 고교 2학년과 3학년인 올해도 장학생에 선정됐다. 하지만 이씨는 최근 아들로부터 뜻밖의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스포츠용품을 잘 사고 있냐’고 물었더니 올해는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며 “아들 사촌 형은 ‘여태껏 장학금 지급 내용도 모르고 있었고, B씨와 통화한 적도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군 명의로 발급된 카드는 B씨가 갖고 관리해왔다는 게 A군 측의 주장이다. 카드사용 통보 문자는 B씨 휴대전화로 등록돼 있어 A군은 장학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몰랐다. 2019년부터 지난 7월까지 이씨가 확보한 카드사용 승인서에는 A군과 관련이 없는 충주시의 골프용품점과 문구점, 온라인 의류업체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씨는 “정작 아들은 한 달에 6만원도 안 되는 포인트만 B씨가 쓰라 할 때만 쓰고 있었다”며 “올해는 5번 나온 장학금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B씨가 자기 아들과 부부를 위해 대부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장학금 대리 사용 의혹에 대해 “장학금을 최초 신청할 때 ‘우리 집 형편이 어려우니 장학금을 나눠쓰자’는 제안에 이씨가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아이들이 전지훈련을 가서 포인트를 제대로 쓰지 못했을 경우 대신 스포츠용품을 구입해줬다”며 “사용하지 못한 포인트는 다음 달에 소멸하기 때문에 일부 사용한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의혹 당사자 “장학금 나눠쓰자 제안에 '친모 동의'” 

충북 충주의 한 고교에서 운동부 활동을 하는 A군의 체육인재 장학금 사용 내역서 일부. 빨간선 안에 표시된 2건은 A군이 산 슬리퍼와 티셔츠 구매 내역이며 나머지는 다른 학부모 B씨가 사용했다. [사진 A군 학부모 제공]

충북 충주의 한 고교에서 운동부 활동을 하는 A군의 체육인재 장학금 사용 내역서 일부. 빨간선 안에 표시된 2건은 A군이 산 슬리퍼와 티셔츠 구매 내역이며 나머지는 다른 학부모 B씨가 사용했다. [사진 A군 학부모 제공]

이에 대해 이씨는 “B씨는 장학금을 처음 신청할 때인 2019년뿐만 아니라 아들이 2학년, 3학년 때도 나와 사촌 형에게 허락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B씨가 아무런 통보 없이 서류를 작성한 뒤 장학금을 타낸 뒤 마음대로 썼다”고 말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해당 장학금은 목적 외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양도할 경우 수혜 자격을 잃을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저소득층 체육인재 장학금은 규정상 타인에게 양도해 사용할 경우 심의를 거쳐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B씨의 장학금 대리 사용 의혹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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