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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안전·경제성 갖춘 ‘SMR’ 확보에 달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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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11면

[SPECIAL REPORT]
탈원전 4년 ‘어두운 그림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내로 제한하는 파리협약의 핵심 정책은 탄소중립이다. UN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는 110여개국에 이른다. 전세계 탄소의 30%를 배출하는 중국은 물론, 미국·인도 등 탄소 다배출 국가들도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유명무실했던 기후협약이 실효적 기대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기후위기 대응에 본격 합류했다.

세계 각국, 차세대 소형원전 개발 경쟁 #무탄소 전기 공급에 원전 꼭 필요 #미·영·캐나다 등 70여 종 연구 중 #자연냉각 가능, 방사선 누출량 적어 #전력 수요 따라 신속 대응에 유리 #모듈화·단순화로 경제성 확보해야

빌 게이츠 MS 창업자(左),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右)

빌 게이츠 MS 창업자(左),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右)

탄소중립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최근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의하면 석탄 발전을 중단하고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 수입을 고려하고 있다. 그래도 탄소 순배출량이 ‘0’이 되는 ‘넷제로(Net Zero)’는 어려워 보인다. 이를 타개하려면 에너지 절약, 효율 향상, 탄소포집 등 여러 수단과 함께 에너지 사용의 전기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난방·취사에 쓰이는 액화석유가스(LNG)도 전기로 전환하는 식이다. 여기에 필요한 전기는 무탄소 방식으로 확보하는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미국이 추진하는 그린뉴딜의 핵심이 전력생산의 무탄소화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전력생산은 그보다 앞서 2035년에 무탄소화를 달성하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무탄소 전기 에너지는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두 가지뿐이다. 미국 그린뉴딜의 한 축에 원자력 기술개발과 이용확대가 들어 있는 이유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원자력 발전 단가는 풍력에 비해 두배 가까이 높다. 원전 건설은 해외 제작자에 의존해야 한다. 그럼에도 원자력 이용확대와 기술개발은 탄소중립을 위한 영국의 10대 전략 중 하나다.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의 핵심에 소형모듈원전(SMR)이 있다. 미국에서 개발 중인 SMR은 10여종이 넘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경수로형부터 용융염 원자로, 열전도관 원자로 등 생소한 제4세대 원자로형 등 매우 다양하다. 그 중 상업화에 가장 가까운 대표 주자는 뉴스케일 원전이다. 60~70㎿(메가와트) 원자로 모듈 12개를 하나의 원전으로 묶어 2020년 미 원자력규제위원회로 부터 설계인증을 받았다.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에 2020년대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뉴스케일 원전 외에도 인허가 심사를 신청한 경수로형 SMR로는 SMR-160, BWRX-3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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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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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대형원전은 외국에 의존해도 SMR은 자국 기술로 개발해 2030년대 수요를 충당하고자 한다. 원자력잠수함의 원자로 공급을 담당하는 롤즈로이스가 대표 주자다. 뉴스케일과 같은 시스템모듈 보다는 혁신 제조기법을 이용한 기기모듈 기술개발에 방점을 찍고 있다. 캐나다는 광활한 국토에 효율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소형원전에 적극적이다. 세계 원자력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러시아도 시베리아 개발은 물론 소형원전의 다양한 활용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9년에 이미 부유식 해상 SMR을 건조해 시베리아 북동쪽 오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시베리아 내륙에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SMR에 적극적이다. 제4세대 SMR인 가스냉각로의 건설 막바지에 있고, 경수로형으로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ACP100 건설을 진행 중이다. 대형 경수로의 선두 국가인 프랑스는 2019년 소형모듈원전 개발에 착수했다. 2020년대에 설계개발을 마치고 2030년대 SMR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개발 중이거나 개념이 제안된 SMR은 70여 종에 이른다.

SMR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첫째, 원전의 확대를 예상하기 때문이다. 특히 석탄·가스발전소는 대부분 500㎿ 이하로 SMR로 대체하기에 알맞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화력발전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 대체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는 화력발전 대체 시장을 연간 100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둘째는 획기적인 안전성이다. 후쿠시마 사고의 트라우마는 핵연료가 녹는 중대사고의 원천적 배제를 요구한다. 현재 세계의 가동원전은 444기다. 원전을 두 배로 확대한다면 안전성은 두 배 이상 좋아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SMR은 원자로 출력이 낮아 근본적으로 대형원전에 비해 안전하다. 낮은 열출력으로 자연냉각이 가능하고, 방사선 물질 재고량이 적어 극한 사고에도 외부 누출량이 적다. 셋째는 수요 대응과 운전 유연성이다. 전력 수요에 따라 모듈 갯수를 조정함으로서 필요한 만큼의 원전 용량을 증설할 수 있다. 대형 원전보다 원자로 용량이 작아 순간 대응에도 유리하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백업 전원 역할이 대형원전에 비해 나은 것이다.

이런 장점들이 있으나 SMR이 겪는 어려움은 경제성 실증이다. 원전 개발은 안전성 향상에 따른 경제성 저하를 용량의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로 상쇄해왔다. SMR은 이런 경제성 확보 경로의 반대방향이다. 원자로 출력을 낮춰서 안전성을 확보하되 대신에 모듈화와 단순화로서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도 SMR 기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12년 인허가심사를 완료한 SMR인 스마트(SMART)를 개발했다. 2015년부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현지 건설을 위한 공동기술개발도 했다. 스마트 원전도 안전성에서는 기존 경수로보다 훨씬 우수하다. 일체형 원자로로서 원전 안전의 최대 위협인 냉각재 상실 사고를 근원적으로 배제할 수 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 원전의 실용화를 위한 걸림돌은 역시 경제성이다. 그래서 모듈화 개념을 강화한 혁신형 SMR의 개발이 필요하다. 정부도 세계적인 추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2020년 12월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SMR 개발 계획을 통과시켰다. 2020년대에 개발을 완료하고 2030년대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이 목표다. 국회에서도 지난 4월 혁신형 소형모듈원전 개발을 위한 국회포럼이 출범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의장을 맡았다.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 국회가 여야가 합치해 원자력 기술개발 지원에 나섰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다.

혁신형 SMR은 일체형 원자로를 유지하되 출력을 자연냉각이 가능한 최대 수준인 160㎿ 수준으로 높이고, 대형 수조에 4개 모듈을 기본으로 장착해 원전을 구성하는 것이다. 20여 년 전 국가 역량을 모아 개발한 APR1400 원전이 성공 신화를 썼다면 2020년대에는 혁신형 SMR이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유력한 무탄소 전력원이 될 수 있다.

2020년대는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기술의 춘추전국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 배터리, 수소 등 에너지 저장기술, 탄소포집과 재활용 기술 등에 더해 SMR도 한 축이 될 것이다. 혹자는 탈원전 하에서 SMR 개발에 의문을 던진다. 탄소중립이라는 명제하에 탈원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혁신형 SMR은 미래세대의 존망이 걸린 탄소제로라는 시대적 사명을 위해 멈출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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