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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량 들쭉날쭉한 풍력·태양광 에너지…물 분해로 수소 만들어 전기차에 활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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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09면

[SPECIAL REPORT]
탈원전 4년 ‘어두운 그림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홍보 문구가 쓰인 수소차를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홍보 문구가 쓰인 수소차를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월 텍사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이례적인 혹한이 몰아닥쳤다. 텍사스에서는 2월 14일부터 닷새 동안 10cm가 넘는 폭설과 함께 기온이 영하 22도까지 떨어졌다. 원자력 발전소로 들어가던 물이 얼어붙으면서 가동이 중지됐다. 물류 마비로 천연가스 공급이 중지되면서 발전소도 멈춰섰고, 풍력 발전기도 얼어붙었다. 전력 공급의 75%를 차지하는 천연가스와 풍력 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약 400만명의 주민들이 추위 속에서 떨어야 했고,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을 비롯한 산업체에는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제대로 전력공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수소 경제 키워 에너지 생태계 묶어야 #한국, 기후변화 심하고 고립된 환경 #재생에너지만 의존하면 정전 우려 #저렴하고 안정적 수소 공급이 숙제

지난 1월 9일 독일에서는 햇볕도 바람도 없는 순간인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가 닥쳤다. 풍력은 설치용량 61GW(기가와트)의 3%인 185만㎾(킬로와트), 태양광은 설치용량 51GW의 6%인 323만㎾만 발전이 이뤄져 당시 수요의 8%밖에 공급하지 못했다. 독일은 6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태양광과 풍력 용량을 평균 전기부하(73GW)의 1.6배인 114GW까지 늘렸지만 순간적인 자연의 변화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텍사스와는 달리 대규모 정전사태는 벌어지지는 않았다. 원자력(14%), 석탄(41%), 가스(17%)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과 동시에 모자라는 20%의 전력을 프랑스 등 이웃 국가로부터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텍사스는 풍부한 천연가스와 풍력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전력망을 다른 주들과 연결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다가 큰 낭패를 봤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정책을 짜기에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해 전력수요의 편차가 큰 데다 일조시간과 바람의 방향도 일정치 않아 신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태양광·풍력 발전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의 변동 폭이 매우 크다. 이러한 간헐성 때문에 설비용량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평균 이용률은 15%, 풍력은 23% 수준이다. 반면 석탄과 원전은 평균 가동률이 80%를 넘는 대표적인 기저 전력이다. 독일이 마음 놓고 신재생에너지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프랑스-스페인-그리스 등 EU 국가들과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전력망 덕이다. 유럽은 남부 지중해의 태양광, 독일 등 중부의 풍력, 북부 스칸디나비아의 수력 등을 동시에 활용하고 전력망을 연결해 최적의 자연조건을 활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외부와 단절된 지리적인 특성 탓에 중국이나 일본과 전력망을 공유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정부가 중국·러시아 등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동북아 수퍼그리드 구축 계획을 내놨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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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수소가 이를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원전은 한번 끄면 다시 전기를 생산하는데 최소 사흘은 걸리고, 재생에너지는 해가 뜨고 바람이 불어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직성 전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초과 수요 사태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특정 시간에 넘치는 전력을 모아 비상시에 대비하는 역할을 수소가 일정 부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는 생산하는 즉시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대용량 배터리인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충전해 놓는 방법도 있지만, 오랫동안 보존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는데다 비용이 100조원 이상 들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수소를 만들어 저장했다가 자동차나 가정용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보급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에도 대응할 수 있다. 현재 전기차용 급속충전기(50㎾)는 에어컨 40대, 완속충전기(7.7㎾)는 5대 분량의 전기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1000만대 가운데 10%만 전기차로 바뀐다면 주택용 전력소모와 버금가는 7~8GW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전력소모는 올여름 최대치인 91.1GW에 달해 예비율이 10.5%를 기록했다.

수소경제의 밸류체인은 생산-저장-활용으로 이뤄진다. 현재 수소 생산은 석유화학 공정이나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물을 전기로 분해해 생산하는 수전해 방식은 탄소가 생기지 않는 진정한 그린 수소로 불리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상태다. 생산한 수소는 파이프라인이나 탱크로리로 운반·저장했다가 자동차·선박·열차 등 운송수단이나 가정·빌딩의 수소전지 발전기 연료로 사용한다. 수소경제 분야 국제 조직인 수소협의회는 2050년 수소 승용차 4억대와 버스·트럭 200만대가 보급돼 연간 이산화탄소 60억t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전환이 중차대한 과제”라며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수소경제 산업 생태계 조성 등 실천 프로그램을 더욱 주도적인 자세로, 속도감 있게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19년 내놓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보완한 ‘수소 로드맵 2.0’을 다음달 공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2025년까지 액화수소충전소 40기를 구축하고 제주 풍력과 연계한 3㎿(메가와트), 새만금 태양광 연계 2㎿ 그린수소 실증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100㎿급 수전해시스템을 개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박종배 건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그린 수소 자체가 생산 단가도 비싸고, 비싼 연료로 또 비싼 전기를 만드니까 비용 상승 효과가 나타나는 게 문제”라며 “우리나라 수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수소를 어떻게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할 것인지가 정부와 산업계에 주어진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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