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부품기업 매출 반토막, 우수 인력 ‘썰물’…백지화 지역 지원금도 토해낼 판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07 00:31

업데이트 2021.08.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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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08면

[SPECIAL REPORT]
탈원전 4년 ‘어두운 그림자’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수명연장을 통해 가동 중인 월성1호기에 대해 안전성 등을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월성1호기(왼쪽)와 신월성1호기. [중앙포토]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수명연장을 통해 가동 중인 월성1호기에 대해 안전성 등을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월성1호기(왼쪽)와 신월성1호기. [중앙포토]

“원전 부품 납품사업을 20년 가까이 해 왔는데 지난 3년 동안 직원이 40%나 줄었고, 매출은 반 토막 난 지 오래다. 일부 업종 전환을 해 겨우 유지하고 있다. 사업을 접을까도 고민해 봤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 거센 후폭풍
창원 지역 업체, 눈물의 업종 전환
세계적 강소기업도 경쟁력 약화

관련 산업 매출 2년 새 6조원 급감
“원전 생태계 근간 흔들리고 있다”

탄소중립 위해선 재검토 불가피
재생에너지와 상호보완해 나가야

경남 창원에서 원전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62)씨의 하소연이다. 이회사는 신고리5·6호기 납품을 해 왔다. 하지만 2017년 탈원전 정책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가 진행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창원의 또 다른 회사인 A사 관계자는 “4년 전까지 연 매출 300억원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200억원도 안 된다”며 “그나마 우리는 선박 자재 등 다른 업종의 금속 가공 관련 일감으로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소규모 업체 중에는 문을 닫은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사는 2018년 말부터 사실상 원전 관련 일감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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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명연장 싸고 이념논쟁까지

2018년 9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탈원전 폐기 촉구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탈원전 폐기 촉구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국내 원전 관련 강소기업인 무진기연도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경쟁력이 약해졌다. 신고리5·6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가 한창이던 2017년 당시 조성은 무진기연 대표는 관련 중소기업 200개사와 함께 ‘원자력산업살리기협의회’를 만들었다. 당시 조 대표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와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방침으로 약 700여개의 원자력 공급업체와 95개의 원도급사, 512개 하도급사와 협력사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라고 했다.

4년이 흐른 현재, 조 대표는 “정부와 맞서 정책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협의회 활동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라고 했다. 함께하던 회원사들도 저마다 ‘먹고살 길’을 찾아 업종을 전환하거나 원전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무진기연은 2019년 해외 원전 건설 프로젝트(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 부품을 공급하는 성과를 낸 덕에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70여 명의 직원 중 30~40대의 주력 기술 인력 상당수가 이직했고, 50대 이상 인력은 업종을 전환해 나갔다고 한다. 조 대표는 “우리는 그나마 탈원전 파동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적잖은 업체들이 업계를 떠났고, 우수 인재들도 타 직종으로 이탈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4년은 원전 산업계 전반을 크게 위축시켰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월성1호기는 폐쇄가 결정됐다. 신한울3·4호기는 건설 중단, 영덕 천지원전1·2호기 건설 사업도 백지화됐다. 특히 신한울3·4호기는 부지 매입 등에 7900억원이 투입된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다. 또 원전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공사가 중단됐던 신고리5·6호기의 완공도 당초보다 2년 이상(2024~2025년) 미뤄졌다. 덩달아 원자력 산업 분야 매출액도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 27조원대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림세를 거듭해 2년 만인 2019년에는 20조7300억원으로 6조원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조현갑 한국원자력산업협회 경영혁신실장은 “이 분야 매출액의 90% 이상이 대기업에서 나올 정도로 절대적이지만 실제로 이를 떠받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직격탄을 맞아 원전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인력의 해외 유출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원자력 공급 산업체에서 일하는 국내 인력은 2016년 2만2355명에서 2019년 1만9449명으로 3년 만에 13%나 감소했다.

탈원전 정책은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전 제작 업체인 두산중공업 본사를 비롯해 280여 협력 업체가 밀집한 창원시가 대표적이다. 곽소희 경남경제진흥원 일자리노동정책팀장은 “원전 업체 신규 채용 감소로 연간 192명에 달하는 역외 유입 청년 수가 감소할 것”이라며 “2030년까지 고급 인력 730명을 포함해 2110명의 청년 인구 유입 기회를 상실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 건설이 취소된 지역에서는 그 후폭풍이 현재진행형이다. 경북 영덕 천지원전은 2012년 9월 건설이 확정됐다. 하지만 2017년 12월 천지원전 건설 백지화가 결정됐다. 정부는 최근 영덕군에 지원한 천지원전 유치 특별가산지원금 380억원(이자 포함 409억원)을 회수하기로 했다. 현지에서는 범군민투쟁위가 꾸려졌고, 정부와 법적 다툼을 벌일 예정이다.

국내 인력 3년 만에 13%나 줄어

경북 구미의 태양광 발전소. [중앙포토]

경북 구미의 태양광 발전소. [중앙포토]

투쟁위 관계자는 “10여 년 전 원전 유치 여부를 둘러싸고 군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면서 “하지만 국가 시책에 협조하고 군 발전을 위해 갈등을 극복하고 겨우 뜻을 모았는데 이제 와서 지원금을 다 토해내라니 말이 되나”라며 정부 결정에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투쟁위 관계자는 이어 “당시 원전 유치를 반대했던 군민 중 일부도 이제는 오히려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며 “주민들 간 반목과 마음의 상처만 남겼다”고 전했다. 영덕을 포함한 경북의 다른 지역도 탈원전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피해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수명 만료가 다가오는 원전에 대한 연장 가동 여부를 둘러싸고 다음 정부와 그다음 정부까지 심각한 갈등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도에서 수명 만료 예정 원전은 5기다. 경주 월성2호기(2026년), 월성3호기(2027년), 월성4호기(2029년)와 울진 한울1호기(2028년), 한울2호기(2029년)이다. 2018년 경북도의 자문기구인 원자력안전 클러스터포럼은 탈원전 정책으로 경북에서만 9조5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경북도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지역 경제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방침이지만 이에 따르는 혼란과 갈등은 모두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명연장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2017년 공론화 위원회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이념논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수명 만료 예정 원전 문제를 포함한 탈원전 정책과 에너지 전환정책 전반에 대한 속도 조절과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지난 5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마련한 로드맵이 3가지 시나리오로 제시됐다. 탄소중립위는 이 시나리오에서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최대 71%로 목표를 잡았다. 이는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비율 6.6%에서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71%까지 늘리는 시나리오대로면 원전이 전체 발전량 중 담당하는 발전 비율은 6~7%까지 줄어들게 된다. 지난해 원전 발전 비중 29.5%에 비하면 4분의 1 넘게 축소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정된 재생에너지의 목표 발전량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인지의 여부다. 또 일각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의 역할을 너무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은 쉽지 않다. 기술적 문제도 있지만 환경적 제약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5개 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160여 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풍력발전 시간은 하루 평균 9.1시간, 태양광은 3.2시간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 원전 정책 일지

문재인 정부 원전 정책 일지

계절에 따른 발전량 차이도 컸다. 전체 발전량은 비슷한 설비용량 원전의 4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전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불가피하게 국민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 인상 문제도 또 다른 논란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박종배 건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가 주요한 에너지원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당장 원전의 대체재로 보기에는 기술적·환경적 제약이 크다”며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적대적이거나 경쟁적 관계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보고 정책에 반영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전, 셧다운 대신 수명 연장해 재생에너지 한계 분담해야”
유승훈

유승훈

에너지 전문가인 유승훈(사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미래에너지융합학과)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관계”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급진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말만 탈원전 정책으로 이름이 붙었을 뿐이고 실제로는 급진적 탈원전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독일처럼 수명 내에 잘 가동되고 있던 원전을 당장 멈춘 것도 아니다. 구호로서의 탈원전만 있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다. 실제로 지난해 원전 발전 비중은 29% 수준이었다. 탈원전 추진하는 나라 중 원전 발전 비중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없다. 탈원전이라는 구호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 불필요한 갈등이 많이 생겼다.”
현재 원전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냥 감(減)원전 정도로 보는 게 맞다. 말로는 탈원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탈원전이 아니다 보니 원전 반대 혹은 찬성 진영 모두에게서 정부가 비판받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원전 발전량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인구 밀도가 높고, 국토 이용률이 높은 우리의 경우 태양광이나 풍력을 늘리는 게 힘든 상황이다. 미국처럼 사막이 있는 것도 아니니 농지나 산림에 설치하면 식량 안보 이슈, 산사태·산림 훼손 등 환경 이슈가 문제 될 수밖에 없다. 원전을 확 줄이기보다는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려가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다. 탄소 저감 차원에서 수명이 도래한 원전을 그대로 셧다운시킬 것인지, 신규 원전 가동으로 대체해야 할지 등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세계 어느 나라도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늘리지는 않는다. 프랑스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보다 원전 유지 쪽으로 결정한 것이고 독일은 재생에너지 쪽에 무게를 두고 정책 방향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런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원전 정책은 어떻게 추진돼야 할까.
“가동 원전의 수명이 다 됐다고 성급히  셧다운 결정을 하기보다는 더 가동할 수 있는지 여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 속도에 맞춰가며 가동 여부도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경우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철저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원전은 소중한 자산이다. 보수를 통해 수명 연장을 함으로써 재생에너지가 갖는 현실적 한계를 보완하고 분담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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