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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공학도 취업 못해 줄줄이 전과, 학생 없어 폐강 위기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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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10면

[SPECIAL REPORT]
탈원전 4년 ‘어두운 그림자’

전북대 양자시스템공학과 4학년 서영찬씨는 현재 서울성심병원 방사선과에서 인턴으로 근무중이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성공 소식을 접하고 원자력 분야를 지망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원전 수주는 400억달러(약 47조원) 규모에 달했다.

원자력 전문 인력 양성 빨간불 #서울대 2018년에만 입학생 6명 자퇴 #취업률 39%, 2년 새 28%P 떨어져 #학사·석사·박사과정 학생 대폭 감소 #KAIST 올 1학기 핵공학 전공 6명뿐 #“공포 마케팅 통한 탈원전 이해 안 돼” #전문가 “인력 수혈 생태계 망가져”

하지만 대학 입학 후 첫 학기를 채 마치지 못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 공대 안에서 ‘탄탄대로’로 꼽혔던 학과가 한순간에 ‘잿빛 미래’ 전공으로 전락하면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씨는 “바로 위 선배들까지만해도 어느 대학원으로 진학할지, 어느 연구소로 취업할지 등 골라서 갈 ‘행복한 고민’을 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탈원전 정책으로 학문 분야 자체가 위기에 처하면서 각자 전과나 복수전공 등 ‘플랜B’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서씨는 4학년 1학기를 마친 지난해 핵공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방사선사 쪽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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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전공 학사 22%, 석사 30% 줄어

정부가 4년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자력 전공자들의 취업난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발표한 원자력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원자력 관련 학과의 학사 및 석·박사 인력 590명 중 239명(40.5%)만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보다 33명이 줄었다. 취업 대신 진학을 택한 전공자는 155명(26.3%)이고 196명(33.2%)은 미취업·휴업·병역 등을 선택했다. 대학별로 살펴보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대학정보공시시스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1958년 국내 최초로 원자력공학과를 설립한 한양대의 경우 2017년 취업률이 81.8%였지만 2019년에는 68.6%까지 하락했다. 서울대 역시 2019년 전공생 취업률이 38.5%까지 하락하면서 2017년 대비 28.2%P 낮아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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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문이 좁아진 것은 원자력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이 줄면서 정부 출연 기관의 인력 채용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에너지 관련 기술 연구에 투자한 규모는 1조54억원이다. 이 가운데 자원순환 등 신산업 분야가 1099억원으로 최대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산업은 714억이다. 반면 원전 관련 예산은 39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68억원(7개 과제)보다도 급감한 상황이다. 연구 과제가 줄어든만큼 관련 인력 수요도 줄어들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2016년 819명의 정규직 신규채용을 정점으로 채용 규모가 계속 줄어 지난해 422명에 그쳤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12명(2016년)에서 84명(2020년)으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역시 64명(2016년)에서 11명(2020년)으로 대폭 줄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에서 양자에너지화학공학 분야 박사과정 3년차인 윤선광씨는 “원자력 전공자들은 정부출연 연구소로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국가가 인력을 고용하는 구조인데 탈원전 정책으로 취업문도 당연히 대폭 줄어들고 있다”며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온 박사 인력이 한명도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전공자들도 급감하고 있다. 국내 대학 가운데 원자력 전문학과를 개설한 대학(대학원과정 포함)은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한양대·포항공대(포스텍) 등 9곳이다. 에너지 관련학과에서 원자력 전공과정을 운영하는 8개 대학까지 합쳐 모두 17곳이다. 여기서 공부하는 재학생은 2017년 2777명에서 2020년 2190명으로 21% 감소했다. 박사과정은 211명으로 6명 느는데 그쳤지만 학사과정은 22%, 석사과정은 30% 각각 감소했다. KAIST는 올해 1학기 입학생 600여명 중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학생이 6명뿐이다. KAIST 관계자는 “2016년도까지 한 학기 평균 20~25명이 입학한 것과 비교된다”며 “심지어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하반기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대의 경우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 2018년 한해에만 학과 내에서 입학생 32명 중 6명이 자퇴했다. 2013~2016년 자퇴생이 4명 뿐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핵심 기술인 ‘원자로 노심(爐心)’ 분야를 택한 석사 진학생은 올해 1학기에 1명뿐일 정도로 급격히 전공자가 줄었다”며 “그 결과 강의 개설 기준인 ‘수강생 3명 이상’ 조건을 채우지 못해 폐강 위기를 겪을 지경이라 학문 발전은 고사하고 학과 존폐를 걱정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미 기존 전공자들의 이탈 움직임도 빠르게 늘고 있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올해 상반기 전국 93명의 학부 전공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3%가 전과 또는 복수 전공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재양성 안 되면 시장 대응 어려워져

인재 유출도 심각하다. KAIST에서는 2019년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 졸업생 3명이 모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학부부터 석사·박사까지 10년 넘게 원자력 분야를 공부한 인재들이 모두 사기업에 취업한 것은 1984년 학과를 개설한 이후 처음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2019년까지 3년간 원자력 관련 공기업에서 265명이 퇴사했다. 이 가운데 25%인 60명이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외에서 근무 중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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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신재생에너지 활성화로 원자력 인력을 흡수하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전공자들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했다. 서영찬씨는 “그냥 고용하고 월급 줄테니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있는 분야가 아니라 나라에서 시키는 공부나 하라는 소리냐”고 반문했다. 김보민(서울대 원자핵공학과 3학년)씨는 “원자력은 발전소뿐 아니라 해상플랜트나 조선·해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데 지금은 아예 ‘원자력 다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갈꺼니까 너네들도 따라와’란 식이니 전공자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공자들은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보민씨는 “체르노빌·후쿠시마 사고 때문에 ‘원전은 위험하다’란 인식이 있는데 우리 원전은 그들과 설계 구조가 달라 사고 가능성이 거의 0% 수렴한다”며 “방사능 유출 역시 원전뿐 아니라 다른 기술에서도 발생하는 것을 무시하고 단순히 공포 마케팅을 통해 몇개월 만에 정책을 밀어붙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소형모듈원전(SMR)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노심 손상 발생 확률이 대형원전은 10만년에 1번 정도라면 SMR은 그보다 1만 배 더 안전한 10억년에 1번 정도로 설계한다”고 말했다. 영국국립원자력연구소는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390조~6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2030~2040년까지 매년 1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교체 수요를 두고 SMR이 천연가스 등과 경쟁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번 원자력 관련 인재 양성 체계가 무너지면 이같은 시장 움직임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 윤종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 교수는 “원자력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안전분야 연구를 위해 양질의 인재가 계속 공급돼 관련 학문이 발전해야하는데 최근 3~4년만에 원자력 생태계가 거의 몰락하다시피 망가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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