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첫 국가 대표 김선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가 돼 앞 못보는 동생의 눈을 고쳐주고 싶었습니다. 북경 아시안게임 레슬링 대표 1차 선발전 자유형 52kg급에서 서울 올림픽 대표 등 기라성 같은 선배선수들을 매트에 내리꽂으며 우승을 차지한 고교 1년생 김선학은 우승의 기쁨보다 어린 남동생에 대한 연민의 정이 복받쳐 울먹이고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김은 막내 동생인 선영(11세)이가 한 살 때 질병으로 앞을 못 보게 되자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해오다 어려운 살림에 동생 치료비를 마련키 위해서는 레슬링으로 성공, 돈을 벌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맹훈을 거듭해 왔다고.
서울 신답 국민학교 5학년 때 중랑중 감독이던 유중현씨 (유중현) 에 의해 발굴, 레슬링에 입문한 김은 중랑중 2년 때인 87년 소년 체전 37kg급에서 우승 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88년 소년 체전마저 석권한 김은 서울 체고에 진학, 정동군 (정동군·34)감독과 만나면서 기술이 만개돼 올 들어서만 7차례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일약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근육이 부드러운데다 스피드 있는 공격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김은 대전 전날이면 상대선수가 누구든 모두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의 표시로 대진표에 상대 선수를 X표로 지워 나가는 등 특이한 기질의 이상한 아이 (?).
1m55cm·52kg의 앳된 소년 김선학은 목재소 수위로 일하는 아버지 김삼봉씨 (김삼봉· 44)와 은행 청소부로 가사를 돕는 어머니 오은화씨(오은화·41)의 3남1녀 중 둘째. <권오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