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인들은 돌아갈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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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 포스트=본사 특약】불가능하게 여겨지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의 하나는 동독인들이 새로이 쟁취한 여행의 자유를 과연 어떻게 사용하려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수십만명의 동독인들이 그저 가방을 꾸려 떠나는 것으로 그만인가.
나의 견해로는 1천6백50만 동독인들 가운데 최소한 1천2백만명 내지 1천3백만명은 지난달 여러 차례에 걸쳐 국경 너머 친지를 방문했던 경험에 미루어 동독에 남아있기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어쨌든 동독은 자신들의 조국이고 수십 년에 걸친 고난 끝에 비로소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무엇 때문에 냉큼 밖으로 떠나려고 하겠느냐는 의문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독인들은 「가난한 사촌」의 자존심을 발휘, 서독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한다. 설사 내일 독일이 통일된다 하더라도 동독인들은 벤츠를 소유해도 그것이 더 이상 그리 큰 성공의 상징이 못되는 서독 사회에 휩쓸려 들기를 두려워 할 것이다.
동독에는 크롄츠 서기장의 전략은 「노아의 방주에 마구 태우기」작전인 듯 하다. 지금 동독을 떠나는 동독인들도 서방에 대한 열정이 식게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일 자리와 주택을 구하기 어려운 서독에서 배겨낼 재간이 있겠는가.
크렌츠는 이 점을 십분 이용, 해볼 테면 해보자는 식으로 나가고 있다. 크렌츠는 이 방법으로 동독인들의 구겨진 주체성을 다시 불러일으키길 원한다.
크렌츠나 모트로프가 개혁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다면 고국을 등지는 상당수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다시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동독의 젊은이들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까지 반드시 서독으로 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떠나려고 하는 것은 여행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헝가리인들은 파리나 로마에 가는데 자신들은 갈 수 없다는 상황을 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동독의 대변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앞세운 동독은 서독 속에 용해되어 자체의 실체를 상실함으로써 결국 하나의 독일로 통일될 것인가.
통일 문제에 관한 한 동독은 언제나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지금의 개혁을 주도하는 동독의 지도자들조차 소의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변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여년 간 지속되어온 공산당 주도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 이렇다할 변혁의 문제는 제기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동독에서도 서독의 녹색당과 같은 성격의 환경 보호론자들이 중심이 된 정당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독 정당 체제의 변화는 통일된 독일의 정치적 균형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현재 동독은 위기에 처해있다. 동독 국민들은 그들이 이룩한 나라를 지키고 싶어한다. 동독 지도부도 이를 알고 있다. 그들은 지금부터라도 개혁을 시작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개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같은 상장에서 동·서독 양자간에는 한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로 지금 뒤늦게나마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다. 반면 서독은 비록 그중 일부는 국민 보건 등 사회 보장 제도가 잘 갖추어진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다.
이 양자가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선 좁혀야 할 간격차이가 너무도 크며 단 시간 내에 이뤄질 수 없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두 독일이 하나가 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 사업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추구돼야만 하는 것이다. <슈테판 고츠리히터기<서독 자민당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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