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바람 불까 빗장단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남북한가네 가로놓인 대화의 장벽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13일 열린 남북적십자 제5차 실무대표접촉과 15일의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위한 제4차 예비회담들이 우리측의 대폭양보에도 불구, 북측이 미동도 하지 않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북측이 최근 들어 대화에 더욱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동구의 개혁열풍과 동독사태가 북한 지도부에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단적이 예로는 이홍구 통일원장관은「동독쇼크」가 북한을 단기적으로 경화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외개방을 촉진시키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측은 예술단교환문제에 있어 우리의 그만한 양보면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실상 그들의 주장이 모두 관철된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측은 오는 21일 회담에서 마지막 걸림돌인 예술단 규모도 북측의 주장(2백50명)을 대폭 수용해 쐐기를 박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북한측은 비단 회담뿐 아니라 원광대 학술회의에 북한학자초청, 경희대 사학과의 고구려유적탐사를 위한 북한 방문계획 등 최근 신청한 학술교류에 대해서도 거부 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무현 통일원통일정책실장은『회담과 교류는 남북긴장완화를 위한 양?』라고 전제,『우리측은 남북간 인적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방으로 끌어내려 하는 반면북한은 회담을 통해 내부 불만을 무마하고 대남 선전을 강화하려는 입장』이라고 분석했다
최 실장은『따라서 북측이 회담을 깨지는 않겠지만 동독사태의 충격을 해소할 때까지 당분간 회담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단기적으로 남북대화 및 교류와 대외개방의 고삐를 늦출 것으로 짐작되는 조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최근 헝가리에 이어 폴란드가 우리와 수교하자 북한은 폴란드주재대사 박상암을 즉각 소환하고『폴란드는 이번에 저지른 행동으로 쓴맛을 볼 때가 있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김일성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비밀방문, 한중관계개선에 제동을 거는 초조감을 보였고 최근 방북한 시거 전미국무차관보에게 북측인사 등은 한국이 유엔에 가입할 경우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고 한다.
북한언론은 지난 9일 동독의 베를린장벽 철폐에 대해 16일 현재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북한 노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은 13일 사설에서『제국주의자들과 그 어용선전 수단들은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해 요란스럽게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언론들이 7월초 평양축전 이후 부쩍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우리식대로 살자」「잡 사상을 몰아내자」는 표어를 내걸고 있는 것은 내부결속이 흔들리고 있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또한 어차피 개방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의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최근 남북대화에서 군사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있는 것도 GNP의 20%를 넘는 군사비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절박성에서 나온 것이다. 판문점에 나오는 북측 기자들도 군사비가 북한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고 시인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볼 때 중국의 천안문사태와 동독사태를 눈여겨본 북한은 당분간 체제유지를 위해 부 결속을 다지면서 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개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동구와 동독의 변혁에 대한 소식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많은 외국관광객이 북한을 왕래하게되면 자연 북한의 폐쇄사회도 흔들릴 것으로 판단, 북한의 개방을 촉진시키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두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