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정치의 장외화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호용 의원 사퇴를 반대하는 대구 집회를 보고 우리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5공 청산을 둘러싼 정치권의 알력이 마침내 장외로 터져 나가고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을 다시 표류상태로 몰아 넣을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구집회가 내세운 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시민이 뽑은 국회의원을 정치 재판식으로 사퇴시키는 것을 반대하고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는 야당을 규탄하는 심정은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호남 쪽의 평민당이 정 의원사퇴를 요구하고 대구시민이 이에 맞서 그 부당함을 외칠 때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그것은 정의원 한사람의 사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불행한 영호남의 지역감정 심화라는 누구도 원치 않는 현상을 불러올게 뻔하다.
이런 지역감정의 격화를 바탕으로 정 의원을 사퇴시킨들 우리 정치에 무슨 득이 있을 것이며 사퇴반대를 관철한들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우리는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고 정치권의 무능과 수준 낮은 논리, 정쟁 적 자세를 새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이런 사태가 온데 대해서는 누구보다 여권에 책임이 있다. 여권이 5공 청산을 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청산에 필요한 실천적 결단은 하지 않고 겉 다르고 속 다른 태도로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대구집회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령 정 의원문제만 하더라도 여권은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처리를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대야협상에서는 정치처리를 추진하는 이중성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정 의원 측의 반발이 거세자 다시 정치처리를 않는다고 돌아서는가 하면, 그렇다고 다른 무슨 대안을 내지도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권 내부의 복잡한 주도권 다툼으로 이 문제가 이용되는 측면까지 나오는 판이다.
결과적으로 대구집회는 여권의심각한 분열을 말해주는 것이고, 이런 상태로 여권이 맡은 바 국정의 책임을 어떻게 다할는지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또 한가지 생각할 점은 정부가 전국 노동자대회·농민대회 같은 행사는 원천봉쇄 하면서 대구집회는 어떻게 막지 않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집회의 본의가 어디에 있든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을 악화시키고 정국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명백한데도 당국이 막지 않은 것은 농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 의원 사퇴여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밝히고 전 대통령들의 증언도 한다든가, 못한다든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 5공 청산에 관한 여권으로서의 안이 나와야 한다. 이 문제로 이렇듯 시간을 끌고 국론이 갈리고 정치권이 반신불수가 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국민투표라도 해야한다는 소리가 나올는지 모른다.
야당 측도 혹시라도 대구집회에 대응하여 지역감정을 자극할 어떤 언동도 하지 않도록 신중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장외의 문제를 장내로 끌어들여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문제를 밖으로 내몰아 대중집회까지 열리게 만든 현실을 개탄하면서 여기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동구에서 보듯 세계사의 거대한 변혁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런 시기에 내부적 단합과 태세 정비로 새로운 역사의 물결에 대응해야 할텐데 도 정치권의 이런 무능과 혼란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