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 통한 하나」에 의견일치|통독장정 이제 막 시작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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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몰고 온 동서독관계의 급격한 진전으로 독일 통일 문제가 새삼 세계적 관심사로 부상되고 있다.
다음은 이에 관한 독일의 차이트지의 테오 좀머 편집국장이 13일 영국 업저버 지에 기고한『독일인은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요지. <편집자 주>
베를린장벽은 허물어져 내리고 양 독국경의 살벌함도 사라지고 있다. 이제 분단된 국가의 통일이 과연 눈앞에 다가온 것인가.
솔직히 말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양 독 국민들 조차 그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금 단계에서 통일문제는「짖지않는 개」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독의 시위자들이 최근 수많은 깃발과 포스터·플래카드를 내걸었지만 어느 구석에도 통일을 요구하는 구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야당의 수십 가지 성명서에서도 그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다만 인간적·능률적·생동적인 사회주의에 관한 것들이었다.
서독에서도 갑작스럽게 민족주의가 터져 나오거나 즉각적인 통합을 요구하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독일문제」를 세계정치의 전면으로 내세우지도 않았다.
다만 감격과 환희, 그리고 솟아나는 충만 감의 물결만 있었을 뿐 국수주의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헌법적 목표인 민족결합은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전부다.
더욱이 이 민족 결합이라는 목표도 독자적·고립적으로 추구되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EC의 틀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동·서독인 들의 의견은 합치한다.
심지어 통일을 지상의 목표로 삼아왔던 많은 독일인들조차 통일은 긴 고난 끝에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있으며 이제 막 긴 여로가 시작됐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동서독국민들은 지금과 같은 중차 대한 시점에서 결코 동독의 붕괴가 추구돼야할 표적이 아니라는 점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동독이 낡은 스탈린주의를 청산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역사적 과정이 미래의 질서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즉 서구의 통합과 동 국가 소련의 지배 및 공산주의의 압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경과다.
이 두 역사적 과제의 전개과정에서 독일문제는 자칫 둘 모두를 그르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가능한 변혁 방안, 즉 ▲EC를 사실상의 정치적 통합체로 만들고 ▲동구를 다원주의적·시장 경제적 사회로 유도하고 ▲동·서구를 화합과 협력의 세계 대전 이전 관계로 복원하는 방안들이 모색돼야한다.
그래서 유럽이 하나의「국가」로 통합될 경우 단일국가거나 또는 두개의 서로 다른 정체를 가진 분단된 국가이든 제한 없이 역할을 그 안에 용해시킬 수 있다.
역사가 만들어놓은 것은 독일의 물리적 분단이지 영토의 분단은 아니다. 즉, 독일의 통일은 단일 국가를 만든다는 의미로서가 아닌 민족의 양분을 종식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지금 풀어야할 과제는 두개의 독일을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국민의 재결합을 이루도록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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