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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가가 훔친 기본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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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기본권과 코로나 방역은 반비례 관계다. 방역 수위가 높아질수록 국민의 기본권은 제한받는 구조다.

한국을 비롯해 각국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과 코로나 방역을 물물교환하고 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기본권을 갈아 넣어 코로나 방역이란 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 자유권(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의 제한 범위는 늘어난다. 사회권(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활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제한도 비슷하다.

이런 가운데 기본권 제한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최근 지난해 3월 정부가 선포한 외출 제한 봉쇄 조치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출판과 집회의 자유를 무턱대고 제한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는 “정부가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선 의회 승인이 필요한 비상사태 선포에 의존했어야 한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시각”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헌법재판소였다면 어떻게 판단했을지 궁금하다. 사적 만남을 제한한 정부의 행정명령은 합헌일까.

기본권 제한 논쟁은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과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지난해 광복절 집회와 이달 초 열린 민주노총 종로 집회에 대한 사례 연구가 그것이다. 조건은 비슷하다. 광복절 집회로 인한 코로나 확진자는 500명이 넘었다. 민주노총 집회 참석자 중에선 코로나 확진자 3명이 나왔다. 검사 경과에 따라 확진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유권과 사회권 제한에 이어 정부가 받아든 건 평등권(법 앞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시험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집회 이후 열린 국무회의(9월 22일)에선 이렇게 말했다.

“방역에 힘을 모으고 있는 국민들의 수고를 한순간에 허사로 돌리는 일체의 방역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공동체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의 삶을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를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를 또다시 위험에 빠트린다면 어떤 관용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일로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까. 개인적으론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