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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인기 없는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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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해리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19세기 중엽 독일(당시 프로이센) 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철혈정책을 펼쳤던 비스마르크. 그는 세계 최초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해 의료보험·산업재해보험·노령연금보험을 내놓았다. 이는 현대사회 4대 보험 중 3개의 근간이 된다. 국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노동계층을 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후발산업국 독일이 노동자를 공장으로 유인하는 정책이기도 했다. 이 정책으로 독일은 노동자의 건강과 노후를 책임지는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가 됐다. (이원재, 『소득의미래』 117쪽)

비스마르크의 노령연금보험과 흡사한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988년 처음 시행됐다. 초기 구상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다. 40년 가입 전제로 생애 소득 대비 연금액은 70%였다. 2028년 40%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보험료율은 최초 3%였지만 1998년을 마지막으로 9%까지 올랐다.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가입자 수는 줄어드는데 수령자는 늘어나는 구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가입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했고 2024년까지 감소세는 이어진다. 반면 수령자는 늘어 2054년에 납부자보다 수령자가 더 많아진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9월, 국민연금이 2041년 적자로 돌아서 2056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이러한 국민연금의 대대적인 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유승민 전 의원이다. 유 전 의원은 “청년들이 돈만 내고 연금도 못 받는 일은 막아야 한다”며 ▶고갈 시점 늦추기 ▶논의과정 투명 공개 ▶노인 빈곤층에 대한 공정소득 제공을 제시했다. 지난 대선 문재인 대통령이 “보험료 인상 없이 연금을 더 받게 해주겠다”고 한 공약에 대해서는 “대국민 사기극, 나쁜 정치로 인한 개혁 실종”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남들은 다 퍼주겠다는데 굳이 이런 인기 없는 공약을 내야 하느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번민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대선 레이스에서 국민이 듣고 싶은 건 바지 논쟁도, 쥴리 논란도, 미래세대에 짐을 떠넘기는 포퓰리즘 공약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되짚고 건강한 해결책에 대해 후보 간에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대선까지 남은 8개월, 더 많은 후보가 이런 ‘인기 없는 공약’을 많이 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