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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념 고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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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신념은 숭고하다. 그걸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이들은 존경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베드로나 이차돈을 비롯한 순교자들, 조국 수호에 앞장선 애국자들, 일신의 안락을 마다하고 타인에 대한 봉사에 생을 바친 이들은 모두 강한 신념에 터 잡고 있다.

‘선진 대한민국’을 일궈낸 것도 신념이다. 독립을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부강한 국가를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이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념은 완고하다. 목적지가 다른 여러 개의 신념이 한 곳에서 만나면 강한 파열음을 내면서 충돌한다. 신과 조국, 이념의 이름으로 행해진 숱한 살육과 희생은 신념이라는 꾸밈말로 한순간 죄 사함을 받는다. ‘완고한 신념’이 한발 더 나아가면 ‘신념 고착’이 된다. 자신의 신념에 집착한 채 신념과 배치되는 정보와, 때로는 진실까지 거부해버리는 현상이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말보다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신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도발적 발언으로 신념고착의 위험성을 꼬집었다. “증거 없이 믿는 맹목적인 믿음은 뭔가를 하는 데 있어서 정당한 이유가 아닌 핑계를 준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신념고착이 전체주의나 군중심리와 결합하면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인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초래된 비극을 드물지 않게 목격했다.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 관련 법무부·대검 합동감찰 결과에 대해 “절차적 정의는 한쪽의 주장이나 신념에 의해 실현되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은 것도 선현들의 지적과 궤를 같이하는 듯 보인다. 아니, 초유의 합동감찰을 지시한 데 이어 알맹이 하나 없는 감찰 결과를 자신의 마음대로 해석해 검찰 공격 용도로 써먹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향해서라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듯하다.

하지만 그는 과연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걸까. 그가 지칭했던 ‘한쪽’에 “이게 과연 신념에 기반한 행위인 건 맞는 거냐”고 좀 더 따져 묻고 싶지 않았을까. 그럴듯한 신념을 내세워 다중을 그 노예로 삼은 뒤 떡고물을 챙기는 ‘신념 장사치’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