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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학이 필요한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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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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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의 역사를 뒤져보면 다채롭다. 1960년대 말 탄자니아는 여성이 가발을 쓰거나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을 금했다. 문화와 전통을 지키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비슷한 시점, 인도네시아 정부도 특이한 금지령을 하나 내린다.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머리 스타일 따라하기였다. ‘인도네시아의 국가적 주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런 이색 금지령이 먹혀들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민소매 원피스와 모자, 진주 목걸이, 풍성함을 살린 우아한 머리 모양은 지금까지 ‘재키 스타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도 금지 목록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래다. 1975년 한국예술문화 윤리위원회는 무더기 ‘금지’ 딱지를 붙였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만든 ‘거짓말이야’를 비롯해 가수 이장희의 ‘그건 너’와 ‘한잔의 추억’ 같은 노래들에 줄줄이 방송금지, 판매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기준은 4개였다. 국가 안보와 국민 총화에 악영향을 주거나, 외래 풍조의 무분별한 도입, 자학·비판적인 작품이거나 선정적이거나 퇴폐적이라는 판단이 서면, 이미 발표돼 많은 사랑을 받는 곡조차도 막았다. 해금(解禁)은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이 이뤄진 이후 이뤄진다.

최근 색다른 금지가 이목을 끌고 있다. 방역을 위한 헬스장 음악속도 제한(거리두기 4단계)으로 에어로빅 등 그룹운동을 할 때 분당 비트 수(bpm)가 120을 넘는 곡을 틀어선 안 된다. 방탄소년단(BTS) 노래도 이 때문에 희비가 갈린다. ‘버터(110bpm)’는 틀 수 있는데, 신곡인 ‘퍼미션 투 댄스(127bpm)’는 안 된다.

또 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할 땐 시속 6㎞ 이하로 해야 한다. 정부는 근거로 비말(침방울) 확산에 따른 감염 우려를 든다. 정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노래 박자가 느리다고, 러닝머신을 천천히 걷는다고 비껴갈까. 정부 의지는 알겠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입안자가 염두에 둬야 할 건 이런 말이 아닐까. ‘우리가 선하다고 결정한 것도 악한 결과를 가지고 올 확률이 있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약간의 선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김민형 영국 워릭대 수학과 교수 『수학이 필요한 순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