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철창에 10년 갇혔다, 19g 탐욕이 부른 곰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5:00

업데이트 2021.07.08 05:05

농장을 탈출했다 사살된 반달가슴곰. 뉴스1

농장을 탈출했다 사살된 반달가슴곰. 뉴스1

지난 6일 경기 용인시의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했다. 한 마리는 사살됐고 남은 한 마리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이다. 곰의 행방보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도대체 곰들이 왜 사육되고 있었는지다.

곰은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던 개체였다. 현재 3살이며 10살이 넘으면 도축될 예정이었다. 합법적인 사육이다. 해당 농가에선 9년 전에도 곰 2마리가 달아나 모두 사살됐다. 5년 전에는 곰 불법 증식 등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10살 된 곰, 웅담 채취 위해 도축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곰 사육이 가능하게 된 건 1981년이다. 정부는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 사육을 권장했지만 불과 4년 뒤 곰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되면서 수입·수출이 금지됐다. 농가들이 반발하자 정부는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웅담 채취를 허용했다. 그 이후 현행법상 10년 이상 된 개체로부터만 웅담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육 곰들은 10살이 되면 대부분 도축된다. 약 19g가량의 웅담을 위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국내 곰 사육 사업 호황기에 최대 1400마리까지 늘었던 개체 수는 지난 3월 기준 398마리로 줄었다. 농가는 27개가 남았다고 한다. 문제는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사육하는 것이 합법인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라는 점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곰을 웅담 채취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법으로 적발 시 개체를 몰수하거나 협의 후 구출이 이뤄진다고 한다.

전시 관람용은 여전히 번식 가능

국내에서 웅담 채취용 곰의 ‘번식’은 불법이다. 전시 관람용으로 용도를 변경하면 번식이 가능하지만, 사육 환경 등 갖춰야 할 조건이 많아 현재 국내 곰 농장은 환경청에서 허가를 받기 쉽지 않다. 이번에 곰 탈출 사건이 벌어진 농장도 중성화가 안 된 개체를 전시 관람용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시설 변경을 하지 않아 앞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부실한 사육장으로 인해 탈출 사고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 5년간 곰 사육 농장에서 불법 증식으로 적발된 곰은 35마리로 그중 7마리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폐사했다고 한다. 박은정 녹색연합 녹색생명팀 팀장은 “불법 증식에 대한 벌금은 200만~300만원에 그친다. 이마저도 마리당으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적발된 건수로 처분이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성체 되면 좁은 철창에서 자해 행동도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육 곰들의 주거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로 가로, 세로 2m의 좁은 철창 속에서 많게는 3마리가 함께 산다. 박 팀장은 "성체인 곰들이 자기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 있게 되면 문제가 벌어진다"며 "동종 간 다툼이 벌어져 폐사하는 일도 벌어지거나 스트레스에 과하게 노출돼 자해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8~2019년 녹색연합은 3600여명의 시민에게 모금을 받아 사육 곰 4마리를 구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각각 전주 동물원가 청주 동물원으로 이동해 보호를 받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이들 동물원의 시설 개선을 위해 국비를 지원했으며, 각 동물원은 콘크리트 바닥을 흙바닥으로 바꾸고 나무 등 구조물을 만들어 야생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곰을 위한 보호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12월 사육 곰 및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을 만들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90억원이 투입되는 국내 첫 곰 보호시설은 2024년 지리산 자락인 전남 구례군에 들어설 예정이다.

녹색연합은 지난 6일 성명서를 내고 "상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불법증식에 대해 몰수 처분과 국가의 보호를 요구해왔지만, 지속적인 불법증식, 열악한 환경에서의 곰의 폐사, 탈출 사고 등 불법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주도로 구례에 만들고 있는 곰 보호시설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며 "이번 곰 탈출 사고를 계기로 불법증식과 사육 곰 산업 종식에 대한 환경부의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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