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각 있는 경기대책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가 마침내 현재의 경제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규정짓고 금리인하를 포함하는 폭넓은 경기대책을 마련하리라 한다.
구체적인 경기대책의 내용은 두고보아야 알 일이지만 우리는 우선 이제까지 순환논적 시각에서 우리 경제를 약관해온 정책당국이 뒤늦게나마 현실을 바로 보고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미 우리가 거듭 지적했듯이 지금 우리 경제는 수출부진과 투자위축·성장둔화·물가상승·고용기회의 감소 등 어느 한곳 성한 곳이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지난 3년 간 연속 12%대의 고속성장율 자랑하던 우리 경제가 불과1년 만에 이처럼 참담한 모습을 보이게 된 이유는 물론 노사분규와 임금인상·원화절상·통상마찰 등 내외여건의 악화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바로 보지 못하고 막연한 낙관론으로 사태를 호도, 적절한 대책마련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운 상황이 단순히 순화초처 조정국면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 구조적 요인에 그 근원을 두고 있고 그 증상이 이미 연초부터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이기본적으로 낙관적 입장을 견지해 온데는 물론 그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태를 잘못 판단, 대책마련에 실기함으로써 어려운 국면을 가속화 시켰다면 그 책임을 깊이 느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제 정부가 대책마련에 착수한다하나 그 내용이 어떤 것이 되겠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위기상황의 기본구조는 임금상승·원화절상에 따른 수출경쟁력의 약화와 코스트 상승·금융부담 증가에 따른 기업의 채산상 악화, 그리고 노사분규와 사회적 갈등에서 파생된 기업 경영환경의 악화가 복합적으로 물려있는 모습이다. 경쟁력 약화는 해외시장 상실과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채산성악화와 경영환경 악화는 투자심리의 위축을 가져오며, 그 같은 사태는 성장둔화와 고용기회감소를 결과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기업의 코스트 부담증가와 임금 상승에 따른 근로자들의 소득증대는 공급·수요 양면에서 물가상승을 유발할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문제를 이렇게 볼 때 당면 대책은 당연히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의 채산성을 보완하며 동시에 인플레적 요인을 최대한 억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듣기로 정부는 금리인하와 환율의 안정적 운용, 수출산업에 대한 시설자금의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한다.
경쟁력 강화와 채산성 악화를 막기위해 금리의 인하나 환율의 안정적운용, 그리고 수출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의 확대 등은 당해 업계에서 이제까지 주장해 오던 것이기도 하고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같은 조치가 우리 경제가 당면한 기본구조에 대한 이해없이 물리적·수량적으로만 이루어질 때 거기에서 파생될지도 모를 부작용은 사전에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물가로부터 오는 위협은 이에 대한 최대한의 대비책이 따라야할 것이다. 경기부양과 인플레 억제라는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차제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제를 이끄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간기업이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이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행정의 실패를 기업에 떠넘김으로써 기업을 넓게는 국민으로부터, 좁게는 사업장의 근로자들로부터 떼어놓고 비난의 표적이 되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같은 정부의 자세가 기업을 궁지에 몰아넣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노사 화합분위기를 해쳐왔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근본적인 경기대책은 온 국민이 위기의식을 공감하고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모으는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