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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나선 지 25초 만에 흙더미 덮쳤다" 광양 산사태 매몰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일 오후 2시50분쯤 전남 광양시 진상면 한 주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82·여)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 캡처. A씨는 이날 오전 5시27분쯤 집 마당에서 곡괭이를 든 채 대문 밖을 나섰다가 산사태를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독자

6일 오후 2시50분쯤 전남 광양시 진상면 한 주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82·여)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 캡처. A씨는 이날 오전 5시27분쯤 집 마당에서 곡괭이를 든 채 대문 밖을 나섰다가 산사태를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독자

6일 오전 5시27분 전남 광양시 진상면의 한 마을. 챙이 달린 모자를 눌러쓴 A씨(82·여)가 집 마당에서 곡괭이 하나를 든 채 대문 밖을 나선다.

80대 여성, 대문 5m 밖서 숨진 채 발견

A씨 집 주변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A씨는 이날 오후 2시50분쯤 산사태로 매몰된 집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문 밖 왼쪽으로 5m 위쪽 지점에서 흙더미에 파묻힌 상태였다.

6일 오후 2시50분쯤 전남 광양시 진상면에서 소방대원들이 이날 오전 산사태로 매몰된 집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82·여)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오후 2시50분쯤 전남 광양시 진상면에서 소방대원들이 이날 오전 산사태로 매몰된 집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82·여)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소방당국에 따르면 산사태 신고가 접수된 건 이날 오전 6시5분쯤이다. 이 사고로 주택 2채와 창고 1채가 흙더미에 매몰됐다. 소방당국은 매몰된 주택 한 곳에 거주하던 A씨가 흙더미에 깔린 것으로 보고 인력 164명과 장비 17대를 동원해 구조 작업에 나섰다.

매몰된 다른 주택에 살던 주민은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외출 중이었고, 인근 주택에 살던 주민 3명은 긴급히 대피했다.

6일 오전 전남 광양시 진상면 탄치마을회관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주택 2채가 매몰되면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매몰된 주택 한 곳에 거주하던 A씨(82·여)는 이날 오후 2시50분쯤 대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오전 전남 광양시 진상면 탄치마을회관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주택 2채가 매몰되면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매몰된 주택 한 곳에 거주하던 A씨(82·여)는 이날 오후 2시50분쯤 대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당초 소방당국은 "어머니는 주택이나 창고 주방 쪽에 계실 것"이라는 A씨 가족의 말을 토대로 집 내부를 집중적으로 수색했지만, A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포클레인 몇 대를 동원했지만, 빗물이 계속 내려 (땅이) 죽이 되다 보니 장비가 빠져 빨리 진입을 못해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광양에는 이날 오전 7시까지 201.5㎜의 비가 내렸다.

낮 12시를 넘겨 A씨 가족이 이날 오전 5시27분과 37분 사이 A씨가 집 대문 밖을 나서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소방당국에 넘기면서 수색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A씨는 산사태 신고가 접수된 지 8시간45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6일 오전 전남 광양시 진상면 탄치마을회관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주택 2채가 매몰되면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산사태가 난 지점 위쪽에서는 2년여 동안 전원주택 건축을 위한 토목 공사가 이뤄졌고, 올해 1월 평탄화 작업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 장정필

6일 오전 전남 광양시 진상면 탄치마을회관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주택 2채가 매몰되면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산사태가 난 지점 위쪽에서는 2년여 동안 전원주택 건축을 위한 토목 공사가 이뤄졌고, 올해 1월 평탄화 작업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 장정필

소방당국은 산사태 직후 A씨가 흙더미에 깔려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최현경 광양소방서장은 "CCTV를 보면 할머니가 대문에서 나오셔서 왼쪽으로 가시는 게 보이는데 약 25초 후에 영상이 끊긴다"며 "(매몰) 사고는 아마 그때 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당초 "A씨가 통화가 돼 생존해 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사고 당시 A씨는 휴대전화를 집에 둔 채 나갔고, 전화기는 A씨 딸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 서장은 "전화를 수차례 해봤는데 30초 뒤 음성으로 전환됐다"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전화하면 통화 중으로 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남부 지방에 많은 비가 내린 6일 오후 전남 장흥군 대덕읍의 한 마을 농경지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남부 지방에 많은 비가 내린 6일 오후 전남 장흥군 대덕읍의 한 마을 농경지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주민은 "산사태가 난 지점 위쪽에서는 2년가량 전원주택 신축을 위한 토목 공사가 진행됐다"며 "주민들이 '토사가 무너져내릴 위험이 있다'며 광양시에 4차례나 민원을 제기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틀간 최고 500㎜의 물 폭탄이 쏟아진 호남에서는 2명이 사망하는 등 호우 피해가 잇따랐다. 해남군 삼산면에서는 오전 3시40분쯤 계곡물이 범람해 주택 한 채가 물에 잠겨 일가족 5명이 고립돼 60대 여성 1명이 사망했다.

밤 사이 내린 집중호우로 6일 전북 익산시 창인동 중앙시장과 매일시장 상가 35동이 침수된 가운데 한 점포가 빗물에 잠겨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뉴시스

밤 사이 내린 집중호우로 6일 전북 익산시 창인동 중앙시장과 매일시장 상가 35동이 침수된 가운데 한 점포가 빗물에 잠겨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뉴시스

전날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해남 현산 529.5㎜, 장흥 관산 463㎜ 등을 기록했다. 진도(69.5㎜)와 해남(63.4㎜)은 1시간 최다 강수량 7월 극값을 경신했다.

전남에서만 주택 130동이 침수돼 이재민이 속출했다. 농경지도 1만4841㏊가 물에 잠겼다. 집중호우로 토사가 유입된 벌교~조성역 구간 등 경전선 일부 구간과 열차 운행이 중단되거나 단축됐다.

여객선은 21항로 33척이 통제됐다. 여수에서 김포·제주로 향하는 항공기 등 6편이 결항했다. 22건의 토사 유실로 도로 곳곳이 통제됐다.

밤 사이 내린 비로 6일 전북 익산시 창인동 중앙시장과 매일시장 상가 35동이 침수된 가운데 상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밤 사이 내린 비로 6일 전북 익산시 창인동 중앙시장과 매일시장 상가 35동이 침수된 가운데 상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북도 이틀간 내린 집중호우로 익산시 창인동 중앙시장과 매일시장 점포 35개가 침수되는 등 62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돼 복구 중이다. 전남은 22개 시·군 전체에 호우특보가 발효 중이고, 전북은 6개 시·군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많은 비를 뿌린 장마전선은 북태평양의 습하고 더운 공기와 대륙에서 내려온 차가운 기류 틈에 묶여 남북으로 폭이 좁고 동서로 길게 남부지방에 형성됐다"며 "7일에도 전남은 30~100㎜, 전북은 50∼200㎜의 비가 더 내리겠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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