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과대 학교-교사끼리도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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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독산동, D국민학교.
교사 3개동, 교실 88개, 2천평 넓이의 운동장에 95개 학급 4천 9백 70명의 학생과 1백 3명의 교직원이 북적거리는 과대학교중의 과대학교다.
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현상들은 과대학교가 안고있는 폐단이 어떤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월초 전입 온 김모 교사(31·여)의 경험담 하나.
『일요일 일직근무때였어요. 교대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늦어 현관에 들어서니 웬 아줌마가 복도에 진열돼있는 트로피들을 닦고 있어요.
「누군가」하며 지나치는데 「선생님, 이렇게 늦으면 어떡해요」하고 꾸짖는 겁니다. 「아줌마는 누군데요」하고 물었더니 맙소사, 같이 일직근무 할 선생님이었어요.』
이 같은 해프닝은 흔히 일어난다. 교무실에는 회의 때만 가끔 들를 뿐 주로 교실에서 지내는 국교 교사의 경우 교사수가 1백 명이 넘으면 누가누군지를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학생들이 때때로 저를 보고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학생들이 저를 학교에 찾아온 학부모로 착각한 거죠. 교사수가 많은 터에 인사이동으로 매년 30명 가까이 새얼굴로 바뀌니 그럴만도 합니다.』이 학교 교감 (51)은 쓴웃음을 짓는다.
교사수는 많고 교무실은 비좁아(40평) 교직원 조회는 일체 생략이다. 교사들은 출근부에 도장을 찍은 뒤 그날 그날의 지시사항이 적혀있는 일일계획서를 한 장씩 받아들고 담임반 교실로 가면 그만이다.
『모이고 흩어지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또 회의라고 해봐야 교장·교감의 지시사항을 묵묵히 듣는게 고작인뎨 차라리 일일계획서 배부가 더 편하고 좋지요.』
교단경력 4년째라는 정모교사 (28·여) 의 말은 무심코 들어 넘길 일이 아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36학급 규모였어요. 학교 돌아 가는게 눈에 훤히 보였어요. 교사들끼리도 친하게 지냈고 우리반 남의반 아이를 가리지 않았지요. 지금은 내가 맡은 업무만 할뿐 이에요. 어떤 의견을 내봐야 채택도, 시행도 어렵고 절차만 복잡해요.』
정교사는 이 때문에 공동체의식과 소속감의 결여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재연구 의논이나 좋은 학습자료 교환은 생각조차 못한다고 했다.
78년4월 개교한 이 학교는 당초에는 40학급 규모였으나 인접한 구로공단 때문에 인구유입이 급증하고 부근에 다세대주택이 겹겹이 들어서면서 학생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83년8월에는 1백16개 학급 규모로까지 팽창했다.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3천여명의 학생들을 부근학교로「분가」시켜 현재 가까스로 95학급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필연적으로 관료화·획일화·통제화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지요. 우리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간교육은 사라지고 지식교육만 남았으며 교육행정은 실종되고 관리행정만 있을 뿐 입니다.』
이 학교 교장(56)은 과대학교가 짊어져야 하는 원죄라고 안타까워한다.
고교중 전국 최대규모인 서울서초동 S고.각학년 20개 학급씩 총60개 학급 3천5백38명의 학생에 교직원이 1배54명. 이 학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3개 학급 학생수와 맞먹는 교직원을 한곳에 수용할 교무실이 없어 교사들은 3학년 담임실·생활지도 담당실·예체능교사실 등에 팀별로 5∼6개 교무실을 쓴다.
자연히 팀외 교사들과는 접촉범위가 줄어들어 교사들끼리도 누가 누군지 모르는 수가 많다. 전교직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일주일에 한번 시청각교육실에서 열리는 전체 회의 때.
기업체의 총회를 연상케 하는 이 회의가 활발한 의견개진이나 토론의 양이 되지 않아 결국 교장의 지시일변도로 진행된다.
42학급이상의 학교에는2명의 교감을 둘 수 있어 이 학교에도 교무담당과 생활지도 담당 등 2명의 교감이 있다.
교장은 교감들간의 반목을 우려, 교사들에게 어느 교감의 소관사항이든 두 교감 모두의 결재를 받도록 요구하고 있어「상과 하」의 갈등이 더욱 깊어만 진다.
『교장이 지나치게 권위적이다, 하의상달이 잘 안 된다 하는 불평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큰 학교의 교장은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입니다. 교사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알지 못해 교장실에 교사이름과 사진을 붙여놓고 있는 형편이니 전체를 관장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획일적인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교사들의 특성·교과운영·교육방법 등을 세분화하기란 이론에 불과하고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학교행정은 사실상 어렵다고 T고 교장은 털어놨다.
선진외국의 경우 국민학교는 학생 3백∼4백명선(학급당 20명선), 중·고교는 8백명선의 「작은학교」 「작은교실」을 운영하고있으나 우리는 서울등 대도시의 경우 인구집중현상으로 요원하다.
현재 문교부가 학교 당 적정학급수로 보고있는 현실기준은 국교가 36학급(학생 1천 5백명), 중·고교가 18학급(학생 1천명선). 이 정도 선이라야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국에서 절반 가까운 학교가 이 기준을 넘고있으며 15개 국교가 81개 학급,46개 중학교와 1백2개 고교가 45개 학급 이상의 초과대 학교다. 선진외국에 비하면 거리가 한창 멀다.
과대학교 교사들은 『통제·획일 등 지시일변도의 행정관료화에서 오는 수동적 분위기 때문에 교육효과를 크게 떨어뜨리고 타율에 안주하는 폐단이 생긴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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