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의 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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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여름 중국 연변에 갔을 때 일이다.
조선족 자치지구인 연변의 수도 연길시로 향하던 중이었다. 북경에서 며칠 간 체류한 후 연길을 향해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장춘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 장춘에서 머무르는 10여시간을 이용해 우리는 그 도시에 사는 조선족들의 문화예술 활동상황을 보고싶었다.
시내 관광도중 우연히 「조선족 문화예술관」이란 간판을 발견했다.
타일을 붙인 3,4층의 남루한 건물 속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그 홀안에서 온통 댄스음악과 함께 신나는 춤을 추며 돌아가는 아주 기이한 풍경의 조선족들을 보았다. 남녀의 구별도, 노소의 구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율동에 맞추어 돌아가는 윤무 속에서 한국인의 신명이 건전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어둡고 음란함을 상징하는 서울의 댄스홀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밝고, 자유롭고, 건전하고, 신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무도장이었다.
참으로 「춤이란 율동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모든 몫을 다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되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몸가짐은 활달하고, 명랑하고, 구김살 없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기악과 무예에 뛰어났었다」는 고대 고구려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 후 연길시에서 있었던 「예술평론 심포지엄」에 이어 베풀어진 만찬장소에서도 그곳 문화예술인들이 장춘에서와 똑같이 춤과 음악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즐기며 서로의 정을 나누고 하루의 회포를 푸는 모습을 보았다. 춤추고 싶은 사람은 모두 나와 아주 자연스럽고 신나게 음악에 맞추어 돌아가는 것이었다.
지금도 연변에서의 그 기분을 돌이켜보며 서울에 사는 우리들은 그동안 선진화의 가파른 오름길을 치달으며 참으로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너무나 잊고 살아왔구나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본다.
양혜숙<이대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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