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DDA 협상 포기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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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무역기구(WTO) 도하 협상의 중단은 국제 무역 시스템에 큰 충격을 가했다. 세계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모든 국가가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도 경제.지리.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협상이 중단돼 WTO는 신뢰성에 타격을 받았다.

도하 협상 없이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교역을 통한 점진적인 무역 자유화와 개발'을 추구한다는 WTO의 목표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더욱이 협상이 상당한 진척을 보인 상태에서 갑자기 교착돼 안타깝다.

농업 분야뿐 아니라 서비스 교역 분야, 또 저개발 빈곤 국가들을 국제 무역 시스템으로 통합하기 위한 WTO 규정 조정 등에서 이미 많은 논의가 발전적으로 이뤄졌다. 기존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의 성과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농업 보조금을 개혁하겠다는 도하 협상의 핵심 목표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유럽은 이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또 2003년 많은 예산을 들여 시작한 공동농업정책(CAP.EU 회원국 사이에서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비EU권 생산자에게 공동 관세를 부과한 것) 개혁작업이 WTO 체제 아래에서 공고히 되길 희망한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 역시 이에 상응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다자간 협상만이 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EU는 그동안 다자간 협상에서 제시했던 것보다 매우 진전된 농산물 시장 개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G20(개도국) 국가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EU는 설탕 수출 500만t, 우유 수출 800만t, 가금류 수출 4분의 1가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수출 보조금의 100% 철폐를 제안했다. 이와 함께 농업 분야 관세를 평균 50%까지 인하할 뜻을 밝혔다. 기존 안인 39% 삭감안에서 더 나아가 개발도상국들이 요구하는 51.5% 안에 맞추려고 노력한 것이다.

EU는 도하 협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지금까지 의견이 일치된 개발 계획만이라도 단독 협의 등의 형태로 소생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면 WTO 회원국은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무역을 통한 원조(Aid for Trade)'를 승인해 빈곤 국가들이 수출 기준에 맞는 도로.항만 등 물류 역량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홍콩 각료회의에서 합의한 '선진국 시장 접근을 위한 최빈국에 대한 무관세 쿼터 혜택'도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다른 국가들도 무관세 쿼터 품목과 혜택을 받을 국가에 대해 EU 수준의 제안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 협상안을 살리는 문제와 별도로 도하 협상은 포괄적 타결이 이뤄져야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도하 협상이 타결되면 수천억 유로의 교역 물량이 늘어날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농업 부문 개혁이 이뤄지고 농산품 교역량이 늘어날 뿐 아니라 새로운 공산품.서비스 교역도 발생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도하 협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교역 협상도 계속해 나가야 한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을 비롯한 여러 협의체와 다양한 지역별 무역 협상의 가능성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양자 협상은 도하 협상 체제에 대한 보완일 뿐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양자 협상도 다자간 협상 타결로 인한 지구적 차원의 혜택을 대체할 수 없다. 글로벌 무역 체제 아래에서만 모든 나라가 개발로 인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U는 도하 라운드의 성공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현재의 혼란이 정돈되면 다른 국가들도 동일한 희망을 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협상이 중단됐지만 EU는 곧바로 다시 시작할 모든 준비가 돼 있다.

피터 만델슨 EU 무역담당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