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재신임' 정국] "국민투표 대상되나" 논란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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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방법이 국민투표로 큰 가닥이 잡혔다. 문제는 재신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느냐다. 그게 가능하다면 언제 하느냐도 관심거리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개헌안(제1백30조)과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제72조)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하지만 헌법과 국민투표법에는 이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없다.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것을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으로 볼 수 있느냐는 데 대해선 헌법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다수는 "헌법 조항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므로 안된다"(건국대 韓相熙 교수)고 하는 반면 소장학자들 사이에서는 "넓게 해석하면 국민투표도 충분히 가능하다"(건국대 林智奉 교수), "우회적으로 중요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고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연세대 金鍾鐵 교수)이란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盧대통령은 지난 11일 "논쟁이 있을 만큼 제도가 불명확하지만 국민투표법을 좀 손질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민주당.통합신당 등도 국민투표를 하자는 입장이어서 대통령과 정치권의 정치적 타협이 전제될 경우 국민투표는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투표 시기에 대해선 아직 전망하기 어렵다. 청와대에선 내년 1, 2월 얘기가 나온다. 盧대통령이 불신임될 경우 대통령 보궐선거를 내년 4월 총선 때 함께 실시하는 방안이 타당하는 등의 이유에서다. 현행 헌법엔 대통령 궐위 때 보선을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야당이 청와대의 뜻대로 따라줄지 의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민투표 실시에 앞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盧대통령 주변의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상규명이 안된 상황에서 야당이 선뜻 국민투표 시기에 대해 동의해줄 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가 내년 총선 후에나 실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국민투표를 할 경우 정치권은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재신임만 물을 것인지, 정책과 연계해 물을 것인지, 투표 결과에 대한 승복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고, 그것에 법적 구속력을 줄 것인지 등을 분명히 해야 뒤탈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개헌과 관련한 국민투표나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실시한 유신헌법 찬반투표 외에는 유사한 사례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며 "논란이 일지 않으려면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투표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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