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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감독의 아픈 질문 “왜 한국은 미혼모 아이를 빼앗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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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의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6월3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은 입양 당시 첨부한 서류 속 모습. [사진 커넥트픽쳐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의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6월3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은 입양 당시 첨부한 서류 속 모습. [사진 커넥트픽쳐스]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영아의 누적 숫자는 20여만 명. 빈곤 저개발 시대가 저물고도 연간 해외 입양아 수는 줄지 않아 오히려 1980년대 초중반 정점을 이뤘다. 1985년에만 연 8837명이 낯선 나라의 가정에 안겼다. 2013년 한국 정부가 자국 내 입양을 우선시하도록 한 헤이그 입양 협약에 서명하면서 해외 입양아 수는 연 300명 이하로 급감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초저출산율에 비하면 여전히 많은 숫자가 고국의 품을 떠나 해외 가정에 입양되고 있다.

출생 직후 덴마크 입양된 선희 엥겔스토프 #한국 미혼모의 결정 뒤쫓는 다큐 국내 개봉 #"사회 전체가 비밀 유지 원하는 구조" 폭로 #"엄마 원망하지 않아…연락해달라" 호소

“한국 엄마들은 아이 키울 형편이 안돼 유럽으로 보낸다고, 내 양부모님은 알고 있었다. 2002년 10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너무 놀랐다. 내가 자란 덴마크 시골 마을에 비해 서울은 으리으리했고 사람들은 부유해보였다. 아무도 ‘넌 어디서 왔니’ 묻지 않고 머리‧피부색이 같은 나를 한국인으로 여겼다. 비로소 내가 왜 입양됐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오는 3일 개봉하는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의 선희 엥겔스토프(39) 감독의 말이다.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4개월 만에 ‘신선희’라는 이름의 여권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 덴마크의 엥겔스토프 가족에게 입양됐다. 미혼의 19세였던 엄마는 입양동의서에 ‘신복순’이라는 서명을 남겼다. 다큐는 이 입양동의서가 자신이 태어난 날 작성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엄마는 자신을 낳기도 전에 입양을 결정했다. 그런데 정말 엄마의 뜻이었을까.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6월3일 개봉)를 만든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 [사진 커넥트픽쳐스]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6월3일 개봉)를 만든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 [사진 커넥트픽쳐스]

“2004년 한국에서 해외입양인 귀환 모임이 열렸다. 당시 행사 일환으로 미혼모 보호시설에 방문했는데, 우리가 떠나려고 할 때 임신 8개월 된 여성이 ‘너는 행복하니?’ 하고 물었다. 아기를 키워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고통스러운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덴마크에서 영화학교 졸업 후 이 다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생모를 찾는 과정과 정체성 갈등이 주가 되는 여느 입양아 다큐와 달리 선희의 영화는 ‘내 엄마가 어떤 환경에 있었고, 왜 그런 결정을 했나’를 따라간다. 주된 촬영 장소는 제주 미혼모보호시설 ‘애서원’. 대부분의 미혼모 지원시설이 입양기관과 연계돼 있어 이미 입양을 결심한 여성들이 입소하는 반면 애서원은 미혼모의 자립과 직접 양육을 지원하기 때문에 ‘결정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등장 인물들은 가명에다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그들에 밀착한 카메라 너머로 잉태의 기쁨, 미혼이라는 설움, 주변과의 갈등, 마침내 아이를 포기하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30여년전 선희 엄마 신복순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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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년 사이 1년 6개월에 걸쳐 애서원에서 숙식하며 촬영한 다큐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거리낌없이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그들 역시 선희를 통해 아이의 미래를 보려 했을지 모른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만난 모든 임신부가 여건만 되면 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예외 없이 아이를 떼놓게 됐다. 딸이 낳은 아이를 자신들의 아이로, 즉 친모의 동생으로 입적하는 부모도 있었다. “동네에서 수군거리면, 우리 애 시집도 못 간다”면서 “내가 키우면 남편이 바깥에서 낳아 온 줄 알 것”이란 게 이 같은 ‘반강제적 결정’의 이유였다.

“여자의 부모, 남자의 부모는 물론 학교도, 병원도, 보호소도 그 여성의 비밀을 보호하려 했다. 실은 이 사회 전체가 비밀 유지를 원하는 듯했다.”

성 평등이 상대적으로 앞서간 유럽 시각에서 납득이 안 돼도 감독은 모순을 캐묻기보다 그 같은 결정에 힘없이 따라야 하는 어린 엄마를 비춘다. 자신과 엄마의 이별도 그랬으리라. 마침내 어느 순간, 핸드헬드로 찍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프레임 안으로 뛰어들어간 선희 감독이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를 껴안고 위로하는 장면은 말 한마디 없이 전해지는 ‘통곡의 서사’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의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6월3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은 입양 당시 덴마크 공항 도착 모습. [사진 커넥트픽쳐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의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6월3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은 입양 당시 덴마크 공항 도착 모습. [사진 커넥트픽쳐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의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6월3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은 입양 부모와 함께 한 어린 시절 모습. [사진 커넥트픽쳐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의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6월3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은 입양 부모와 함께 한 어린 시절 모습. [사진 커넥트픽쳐스]

“아이를 입양보내면서 ‘더 행복해질 거다, 더 잘 살 거다’ 위안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양부모님 덕에 행복한 시절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뿌리를 찾는 데 인생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평생 가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과정에서 엄마의 선택권이 너무나 없단 점이다. 내 엄마가 이런 식으로 다뤄졌다면 엄마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공론화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이젠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며 담담하게 마무리 된 다큐와 달리 선희 엥겔스토프의 요청은 담대하고 분명하다. 한국정부가 독립위원회를 조직해서 해외 입양인 실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이미 덴마크‧스위스 등 유럽 4개국이 실태 조사 중인데 가장 큰 입양아 수출국으로서 협력을 요청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 인식이 변해서 미혼모·미혼부가 양육 지원을 받고,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보장되길 바란다고 했다.

“생모를 찾기 위해 부산 보육원에 갔을 때 경찰은 3명의 신복순을 찾았고 그 중 한 명은 입양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나를 만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실망해서 돌아나오는데 기관 관계자가 ‘당신이 기부를 하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충격이다. 이 사회엔 입양을 둘러싼 더 많은 부조리,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는 것 같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이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6월3일 개봉)의 시작 무렵 자신의 입양 서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커넥트픽쳐스]

덴마크 입양아 출신 선희 엥겔스토프(39, 본명 신선희) 감독이 다큐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6월3일 개봉)의 시작 무렵 자신의 입양 서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커넥트픽쳐스]

덴마크의 다큐 전문 제작사 ‘파이널 컷 포 리얼’과 국내 제작사 ‘민치 앤필름’ 협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코펜하겐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엄마됨과 유년기, 상실과 갈망에 관한, 내가 이제껏 보거나 상상해온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중요한 작품”(‘액트 오브 킬링’의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등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 25일 언론 시사회에서 선희 감독은 ‘영화 만들 때부터 가장 중요한 나라였던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 데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본지 인터뷰 말미에 감독은 “여전히 엄마의 연락을 기다린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엄마가 꼭 봐주길 바라면서 찍었어요. 엄마를 이해하고 원망하지 않으니, 엄마도 자신을 원망하지 마세요. 사랑해요, 영원히.”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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