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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내 작품 베꼈다" 땡땡이 할머니 파란만장 9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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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개봉한 다큐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Kusama: Infinity)’는 '땡땡이 아티스트'로 사랑받는 할머니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평생에 걸친 예술혼을 조명한다. [사진 오드]

19일 개봉한 다큐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Kusama: Infinity)’는 '땡땡이 아티스트'로 사랑받는 할머니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평생에 걸친 예술혼을 조명한다. [사진 오드]

현존 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 낙찰가 1위(2014년 710만 달러), 2016년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 2020년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가 해외 아티스트 1위….

'호박' 작가 쿠사마 야요이 조명한 다큐 #동양인·여성 편견 극복한 예술세계 그려

빨간 단발 가발이 트레이드마크인 할머니 화가 쿠사마 야요이(92)를 가리키는 수식어들이다. 이런 말이 와 닿지 않는다면 그의 대표작 ‘호박(Pumpkin)’을 떠올려보라. 어디선가 한번은 봄직한 이 같은 ‘무한 반복’의 설치미술은 오늘날 그를 가장 독창적이고 앞서간 여성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그가 이 같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무려 60세 때였다. 절망에 빠져서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지 16년 만에 뉴욕 국제현대미술센터에서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이 열리면서다.

미술관 섬으로 유명한 일본 나오시마의 상징이 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중앙포토]

미술관 섬으로 유명한 일본 나오시마의 상징이 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중앙포토]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그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한 걸까. 19일 개봉한 헤더 렌즈 감독의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Kusama: Infinity)’는 빨간 가발처럼 불온했던 쿠사마의 무한 내면을 탐색하는 다큐다. 쿠사마의 육성 인터뷰에다 그의 젊은 시절 사진‧영상 등을 깨알같이 찾아서 결합했다. 그렇게 찾아낸 이야기들은 어느 동양인 여성 아티스트의 고군분투를 넘어 현대미술계의 놀라운 이면을 들려준다.

“전 결국 저의 심리적 문제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셈이에요.” 널리 알려진대로 그의 심리적 문제는 일차적으로 유년기에서 비롯된다. 쿠사마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종묘(種苗)회사 대표의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 빨간 꽃무늬 식탁보의 잔상이 온 집안에 보이는 등 착란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외도 중이었는데 어머니는 쿠사마에게 아버지의 이런 행각을 염탐하게 했다. 이 때 얻은 트라우마로 그는 평생 섹스에 거부감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쿠사마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했고 1957년 28세 때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큐의 중심이 되는 건 이때부터다. 남아 있는 사진자료와 주변 인터뷰로 보면 그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괴짜’ ‘관종’이었던 듯하다. 동양인 여성이 낯선 뉴욕 화단에서 거침없이 자신을 세일했고 파티에선 기모노를 입은 채 후원자를 끌려 노력했다. 당대의 천재들과 어울리며 바디 페인팅, 반전 시위 등 강도 높은 행위예술을 벌인 것도 유명하다. 특히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 소동은 그 자체가 행위 예술이었다. 당시 그는 초청받지도 않은 채 이탈리아관 앞마당에다 무단으로 100개의 은색 공을 깔았는데, 이걸 개당 2달러에 팔기도 했다.

19일 개봉한 다큐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Kusama: Infinity)’는 '땡땡이 아티스트'로 사랑받는 할머니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평생에 걸친 예술혼을 조명한다. [사진 오드]

19일 개봉한 다큐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Kusama: Infinity)’는 '땡땡이 아티스트'로 사랑받는 할머니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평생에 걸친 예술혼을 조명한다. [사진 오드]

이때 이미 평생의 테마가 된 ‘무한 반복’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처음엔 회화였다가 설치 미술이 됐고 점점 소재와 규모가 ‘파격’으로 치달았다. 다큐에 따르면 이런 그를 좌절시킨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1963년 12월 쿠사마는 거트루드 스타인 갤러리 전시에서 ‘집적: 1000척의 배’라는 작품과 이 작품의 사진을 벽에 도배하는 독특한 반복 패턴 예술을 선보였다. 당시 세계 정상의 예술가로서 그와 교분이 깊었던 앤디 워홀은 직접 전시회에 찾아와 극찬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뒤 워홀은 자신의 전시회에서 소의 이미지로 벽을 뒤덮는 유사한 패턴의 작품을 선보였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쿠사마의 작품이 몇몇 지인들에게 호평을 받을 때 워홀의 작품은 신문기사로 다뤄지며 화제가 됐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1962년 쿠사마는 부드러운 천조각을 직접 바느질해서 소파를 덮거나 남근을 형상화하는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소재 사용은 당대 화단에선 처음이었다고. 그런데 그와 그룹전을 함께 한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가 이후 부드러운 조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스타 작가로 거듭났다. 쿠사마는 다큐에서 “그의 아내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큐도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판관’ 노릇하는 건 자제한다. 다만 쿠사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다 마지막 한 방이 터진다.

1965년 쿠사마는 그의 첫 번째 ‘거울의 방’을 카스텔란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당시엔 5000달러에도 안 팔렸지만 지금은 200만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몇 달 뒤 루카스 사마라스라는 작가가 좀 더 이름난 페이스 갤러리에서 거의 비슷한 작품을 선보였다. 다큐에 따르면 쿠사마가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한 게 이때다. 창문에서 뛰어내렸지만 자전거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꽁꽁 걸어잠그고 다른 화가들이 엿보지 못하게 했다. 쿠사마는 유럽으로 무대를 옮겨 자신의 작품을 알리려 노력하지만 1973년 모든 것을 단념하듯 일본으로 돌아온다. 일본 사회의 무관심에 다시금 좌절한 그는 두 번째 자살 시도에 이른다. 마침내 76년 세이와 정신 병원에 자진 입원했고 이때부터 낮엔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밤엔 병원에서 생활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2013년 중앙일보 기자가 도쿄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만났을 때 쿠사마 야요이의 모습. [중앙포토]

2013년 중앙일보 기자가 도쿄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만났을 때 쿠사마 야요이의 모습. [중앙포토]

“공황장애로 30년 넘게 고생했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예술은 내게 최고의 의사다. 나는 그리는 게 너무 좋아 잠잘 때도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릴 거다.” 2013년 본지 기자가 도쿄의 스튜디오를 찾아가서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이다. 90년대 이후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고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며 각광받고 있지만 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무한 반복의 땡땡이를 창조하고 있다. “예술을 하며 크나큰 우주를 경험하다 보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구나’ 싶다. 죽을 때까지 예술을 계속할 것이며, 사후 수 백 년이 지나도 유효할 메시지를 남기겠다. 이를 위해 혼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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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쿠사마의 무한 반복은 우주와 생명의 이미지로 부각되며 사랑 받고 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을 비롯해 아우디, 랑콤, 코카콜라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콜라보레이션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쿠사마의 인기는 뜨겁다. 2013년 대구 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33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표작 중 ‘호박’과 ‘무한 거울의 방’이 제주 본태박물관에 전시돼 있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과 석파정 서울미술관,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는 ‘호박’이 설치돼 있다. 구겐하임 갤러리의 한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데 쿠사마가 그런 사람이죠. 그는 세상을 바꾸길 원했고, 그렇게 했어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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