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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창고에서 찾은 원고뭉치…문화재로 보는 우리 근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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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사전 편찬을 위해 1929년부터 1945년 해방 전후까지 작성한 원고. 국가등록문화재였다가 지난해 10월 보물(2086호)로 승격됐다. 조선어학회 사건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한글학회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사전 편찬을 위해 1929년부터 1945년 해방 전후까지 작성한 원고. 국가등록문화재였다가 지난해 10월 보물(2086호)로 승격됐다. 조선어학회 사건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한글학회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를 점검하던 역장 눈에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된 상자가 눈에 띄었다. 패전한 일본이 막 물러난 후라 이 창고에는 갈 곳 없는 화물이 많았는데 상자 안엔 재판 증거물로 보이는 원고지 묶음이 들어있었다. ‘그 사람들이 찾던 것이 이것이구나.’

손기정 금메달, 아리랑 드레스 등 80점 #국가등록문화재 도입 20주년 전시 공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됐던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 등은 해방 후 함흥 감옥에서 석방돼 8월 19일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경찰에 압수됐던 원고를 찾느라 혈안이 돼있었다. 1929년 10월 108명이 모여 ‘조선어 사전’ 편찬 모임을 결성한 이래 13년간 작업한 철자법·맞춤법·표준어 등의 우리말 작업 원고가 송두리째 사라져서다. 원고지 2만6500여 장 분량 원고가 창고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1947년 한글학회가 발간한 첫 우리말 사전 『조선어 큰사전』은 훨씬 늦춰졌을 것이다.(최경봉 저 『우리말의 탄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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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2086호(옛 국가등록문화재 524-1호). 한글학회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2086호(옛 국가등록문화재 524-1호). 한글학회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금 서울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 가면 이 원고의 일부를 만나볼 수 있다. 세로형 원고지에 ‘터덜거리다’를 ‘급한 마음으로 가나 몸이 피곤하여 떠는 거름(걸음)으로 겨우 걷다’라고 풀이했다가 이후 후세 학자들이 빨간 펜으로 ‘지친 몸으로 걸음을 무겁게 힘없이 걷다’로 교정한 과정이 또렷하다. 박물관이 문화재청과 공동으로 7월 18일까지 여는 국가등록문화재 제도 도입 20주년 특별전 ‘등록문화재, 광화문에서 보다’를 통해서다. 전시는 우리 근현대사의 발자취가 뚜렷한 국가등록문화재 46건 80점을 실물원본과 영상물 등으로 보여준다.

국가등록문화재란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등) 외의 문화재 중에서 특별히 보존과 관리가 필요한 문화재를 등록‧관리하는 것. 2001년 도입돼 4월 5일 기준 총 901건(건축물·시설 등 부동산 586건, 동산 315건)이 등록돼 있다. 삼풍·성수대교 참사 때 떴던 우리나라 첫 소방헬기 ‘까치 2호’, 1926년 반포된 한글점자 ‘훈맹정음’ 관련 유물, 연세대 4월혁명연구반의 ‘4·19 혁명 참여자 보고서’ 등 최근 등재된 유물 목록만 봐도 지난했던 우리 역사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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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선수단이 가져간 깃발(페넌트)이다. 태극기와 국호가 쓰여있는데, 아직 정식국호가 정해지지 않아 '조선올림픽 대표단'이라고 쓴 게 눈에 띈다. 국가등록문화재 492호. 한국체육박물관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선수단이 가져간 깃발(페넌트)이다. 태극기와 국호가 쓰여있는데, 아직 정식국호가 정해지지 않아 '조선올림픽 대표단'이라고 쓴 게 눈에 띈다. 국가등록문화재 492호. 한국체육박물관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국가등록문화재 41호. 원래는 일제강점기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건립한 경남도청으로 6.25 전쟁 당시 정부의 임시수도 청사로 사용했다. 현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국가등록문화재 41호. 원래는 일제강점기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건립한 경남도청으로 6.25 전쟁 당시 정부의 임시수도 청사로 사용했다. 현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번 전시에선 독립신문 상해판,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 손기정의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금메달, 양단 아리랑 드레스 등을 실물로 만날 수 있다.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인천 선린동 공화춘 등의 건축물은 입체 영상 다큐멘터리 형태로 선보인다. 특히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애초 등록문화재였다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보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해 이번에 특별전시 된다.

등록문화재는 생성된 지 50년 지난 유산을 대상으로 하기에 1971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해당된다. 지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엄격한 원형 보존이 원칙이지만 등록문화재는 유물의 중요부위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융통성을 둔다.

예컨대 전시 말미엔 우리나라 최초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자인 제3회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1959년 제8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 시 착용한 드레스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가 한복과 서양식 드레스를 절충·융합하여 제작한 '아리랑 드레스'인데 새옷처럼 깨끗한 자태가 두드러진다. 유정환 학예연구사는 “소장자인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신혜순 관장이 필요시 수선하며 보관해왔고, 이번 전시 때도 직접 세팅에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양단 아리랑 드레스는 1950~1960년대 외교관 부인들이 파티 드레스로 많이 입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자인 제3회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1959년 제8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 시 착용한 '아리랑 드레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가 한복과 서양식 드레스를 절충·융합하여 제작해 이렇게 불렸다. 이 같은 양단 아리랑 드레스는 1950~1960년대 외교관 부인들이 파티 드레스로 많이 입었다. 국가등록문화재 613호. 신혜순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우리나라 최초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자인 제3회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1959년 제8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 시 착용한 '아리랑 드레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가 한복과 서양식 드레스를 절충·융합하여 제작해 이렇게 불렸다. 이 같은 양단 아리랑 드레스는 1950~1960년대 외교관 부인들이 파티 드레스로 많이 입었다. 국가등록문화재 613호. 신혜순 소장.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밖에 등록문화재엔 백범 김구(1876~1949)가 1949년 총격으로 서거할 당시 입고 있던 조끼적삼 등 의복류 일체와 독립운동가 서재필(1864~1951)이 미국 병원에서 근무할 때 입었던 진료가운 등 다양한 복식류가 포함돼 있지만 전시엔 디지털 사진자료로만 선보인다. 전시 말미엔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영화 가운데 등록문화재가 된 ‘검사와 여선생’ ‘시집 가는 날’ 등이 짤막한 클립 영상으로 상영돼 눈길을 끈다. 다만, 1개 전시실을 쪼개 4부에 걸쳐 등록문화재를 보여주는 방식이 연대순 나열에 그치는 느낌이다.

전시 관람 후 5층 상설전시관에서 이번 특별전과 별개로 6‧25 전쟁 유물 등 근현대 편린을 만날 수 있다. 13일 오후 12시50분부턴 특별전 관련 학술대회 ‘문화재로 근현대사를 보다’를 유튜브(www.youtube.com/muchkorea)로 생중계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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