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인기밴드 ‘다섯손가락’ 리더, 카페지기 된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05.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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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클래식·가요·재즈를 넘나드는 음악감상 카페 ‘책가옥’의 이두헌 대표. 1980년대 인기 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더·기타리스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클래식·가요·재즈를 넘나드는 음악감상 카페 ‘책가옥’의 이두헌 대표. 1980년대 인기 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더·기타리스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엘레지의 왕자 이 눈물 쏟아질 슬픈 노래 대잔치가 5월 28일 금요일 밤 8시 책가옥에서 열립니다.”

카페 겸 공연장 연 이두헌 대표
수준급 작은 무대 마련하고 싶어
평생 번 돈 다 쏟아 ‘책가옥’ 건축
완벽한 방음·흡음, 라이브 녹음도
쉬지 않고 쓴 곡으로 가을엔 신보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수지에 위치한 카페 ‘책가옥’의 SNS에 올라온 공지에 음악팬들이 술렁였다. 함께 붙은 해시태그 ‘#이승환콘서트’ 때문이다. ‘공연의 신’ 이승환이 50석 동네 커피숍에 뜬다는 소식에 역대급 ‘피켓팅’(피 튀는 티켓 경쟁)이 예상됐다. 지난 21일 1인 1매 제한(장당 18만7000원)으로 열린 좌석 예매는 1초 만에 마감됐다.

아무리 코로나19로 대형 공연이 어렵다지만, 한국 최고 퍼포먼스의 제왕이 왜 하필 이곳일까. “어느 날 승환이가 ‘형, 나 거기서 공연할래’라고 했다. 대형 공연 때 들려주기 힘든 슬픈 노래로 ‘궁상의 끝자락을 보여주겠다’ 하더라.(웃음)”

성당을 닮은 삼각지붕의 책가옥은 총 높이 11m, 내부 층고 7m에 이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당을 닮은 삼각지붕의 책가옥은 총 높이 11m, 내부 층고 7m에 이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예매날 오전 책가옥에서 만난 이두헌(57) 대표의 말이다. 1980년대 포크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더·기타리스트 그 이두헌이다. 4050 이상에겐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층에서 본 거리’ 등을 쓴 뮤지션으로 알려졌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겐 인스타 명소 책가옥의 머리 하얀 커피로스터로 더 친근하다.

고딕 성당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삼각 지붕에 빨간 벽돌 외관, 웅장한 삼나무 문이 이채로운 책가옥은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띄엄띄엄 단독주택과 식당, 창고형 건물이 자리한 한적한 동네에 총 높이 11m, 내부 층고 7m의 단층 건물로 지었다. 카페라기엔 단을 높인 무대가 널찍하니 애초부터 소극장으로 기획한 모양새다. 미국의 유명 팝듀오 ‘홀 앤 오츠’ 출신 대릴 홀이 운영하는 ‘대릴스 하우스(Daryl’s House)’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뉴욕주 외딴 오두막에다 친분 있는 뮤지션을 불러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려주는 걸 5~6년 전 유튜브로 보고 ‘이거다’ 싶었다. 설 만한 무대가 점점 적어지는데. 작은 공간이라도 스튜디오 공연만큼 수준 있게 할 수 있다면….”

40년 가까운 음악활동과 13년간 방배동 와인 바 하며 번 돈을 모두 이 공간에 쏟았다. 10여년 간 가족처럼 지내온 유희열 가구작가에게 의뢰해 클래식 기타 상판 만드는 캐나다산 목재로 천정을 두르는 등 방음·흡음 시설에 완벽을 기했다. 책가옥이란 이름에 걸맞게 선반엔 다채로운 서적과 손때 묻은 펜더 기타가 비치돼 있다. “외관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라이브 녹음까지 24채널로 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했다.

이승환

이승환

지난해 2월 금호영재 출신 ‘스트링 트리오’의 실내악 공연을 시작으로 ‘풀잎사랑’ 최성수의 언플러그드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섹소포니스트 손성제 공연 등을 진행했다. 클래식·재즈·가요·팝 등 제한 없이 주 1회 공연을 목표로 연간 스케줄을 짰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절반도 못했다. 이두헌 자신도 김민기 헌정음악회 등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1980년대 ‘다섯손가락’ 당시 회색 도시의 애수가 깔린 보컬과 감성을 저미는 기타 리프는 변함없다.

“1983년 만 스물도 안 된 친구들끼리 아마추어로 시작한 밴드라서 당시엔 인기란 거 실감도 못 했다. 제대로 악법도 모르고 쓴 곡들인데 이제 보면 참신한 조성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김범수·성시경 등의 리메이크 덕에 꾸준히 사랑받았고 ‘풍선’(작사 이두헌, 작곡 김성호) 같은 경우 이젠 동방신기의 오리지널 곡인 줄 알더라. (웃음)”

밴드 해체 후 미국에 유학 갔다 돌아온 그는 십수 년 전부터 커피에 빠졌다. 일본의 커피 명인 다이보 가쓰지에게서 영향받은 로스팅 기법으로 손수 소량으로 원두를 골라 볶고 내리기 시작했다. “디테일 차이를 깨우치느라 갖다 버린 커피만 해도 수십 수백 ㎏ 될 것”이란다. 지금은 카페 단골뿐 아니라 책가옥 브랜드 커피를 정기 주문하는 매니어들도 많다. “결국 음식은 사람과의 관계다. 소주 마실 때와 와인 마실 때 하는 이야기 다르고, 알코올 없이 커피로 만나는 사람이 다르더라. 그 차이가 차츰 나를 변화시켜 여기까지 왔다.”

또 하나, 15년째 음악과 리더십을 주제로 대기업 초청 강사로 일한 경험도 삶을 바꿨단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 일가를 이룬 분들이 삶에 대해 보이는 예의 같은 게 있다. 돌아보니 내가 그런 존중이 부족한 채 젊었을 땐 막살았더라. 나희덕 시인이 어느 책에서 ‘장인(匠人)으로서의 엄격함과 예술가로서의 파격’을 말했는데, 나도 그렇게 나이 먹고 싶다. 20대 같은 호흡을 내진 못 해도 60엔 그 나이에 맞는 소리를 내고 싶어 쉬지 않고 곡을 쓴다.”

그런 의지를 담아 내후년 결성 40주년을 맞는 ‘다섯손가락’의 컴백 신보도 작업 중이다. 보컬 임형순과 건반 최태완 등 원년 멤버에 현재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 중인 베이스 이태윤과 단골 세션 드러머 장혁까지 ‘완전체’로 뭉친다. 타이틀 곡 제목은 ‘나는 나이기에 아름다운 것’.

“올가을쯤 신보 나오면 다섯손가락도 책가옥 무대에 선다. 이번 이승환 공연을 계기로 더 알려지면, 예컨대 아이유 같은 이도 와서 공연할 수 있지 않을까. 백건우 선생님을 모시고 듣는 그 나이의 슈만은 또 어떨까. 외국 밴드가 방문해서 ‘여기 꼭 서고 싶었다’ 하는 공간으로 계속 만들어가겠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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