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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만 비벼졌다, 文앞에서 고성까지 오간 靑회동 122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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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22분간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과의 26일 청와대 회동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주장만 펴다 끝났다. 한ㆍ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강조하고 싶은 문 대통령, 현안 문제로 문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주요 야당 대표들의 동상이몽으로 회동은 내내 겉돌았다.

회동 뒤 여의도로 돌아간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과 인식을 같이 한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는 총평을 내놓았는데 결과적으로 이 말이 이날 회동 풍경을 가장 실감나게 전하는 표현이 됐다. 다른 참석자들도 “전혀 화기애애하지 않았고, 각자 할 말만 했다”,“문 대통령도 이런 불편한 자리에서 식사를 길게 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전혀 아닌듯 했다”는 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 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정의당 여영국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열린 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 여야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 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정의당 여영국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열린 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 여야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만난 건 지난해 2월 26일 이후 1년 3개월여 만이다. 회동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정의당 여영국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참석했다.

회동 분위기는 모두 발언에서부터 굳어졌다. 문 대통령은 “한ㆍ미동맹이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했다”며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고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의 백신 공급 파트너십 구축과 반도체ㆍ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 협력 강화 등의 성과를 설명하며 “국회의 초당적 협력을 기대하며 회담의 성과를 잘 살려나갈 수 있도록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김 대행은 별다른 덕담도 없이 곧바로 돌직구를 던졌다.

그는 “말씀하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과 실망이 큰 것 또한 사실”이라며 “백신 스와프를 통해 우리 백신이 확보되지 않은 것을 매우 유감이다. 국민들은 언제 마스크를 완전히 벗을 수 있는지 믿을 수 있는 계획표를 확실하게 보여달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김 대행은 이어 자영업자 손실보상 문제, 일자리와 부동산 정책, 암호화폐, 탈(脫)원전 정책 등의 핵심 현안들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손실보상의 소급 적용에 대해선 “속시원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일자리와 관련해선 “경제 정책의 전면적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문제 장관들을 추천하고 검증한)인사라인을 교체하는 것이 옳다”, “대선의 공정 관리를 위해 행정안전부ㆍ법무부 장관, 선관위 상임위원을 중립적 인물로 교체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정의당 여영국 대표, ,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환담 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정의당 여영국 대표, ,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환담 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가세했다. 그는 백신확보 관련 기술 이전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단순한 병입 수준의 생산 협의에 머물렀는데, 기술이전까지 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문제, 한ㆍ미ㆍ일 협력, 쿼드 참여, 백신 기술 이전, 원전사업 재개 등 미리 준비해온 5가지 요구사안을 밝혔다.

특히 백신 문제를 두고는 회동 내내 참석자들 사이에 전선이 형성됐다.

야당 측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 권한대행은 비공개 회의가 시작되자 문 대통령에게 “(당초 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던) 한·미 백신 스와프가 왜 성사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문 대통령은 “백신 스와프는 정상회담의 의제가 아니었다”며 “이미 백신이 충분히 확보됐다. 스와프를 할 단계를 넘었으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범여권 정당인 열린민주당의 최 대표가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치공세를 하지 말라”고 주장했고, 이에 김 대행은 “정치공세로 폄훼하지 말라”며 언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김 대행이 "과거 화이자ㆍ모더나가 한국과 계약하고 싶어 안달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몰아치면서 행사장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답변 중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방역 원칙도 있었지만, 김 대행은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 발언을 이어가느라 청와대가 준비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김 대행의 거듭된 공세에 "그만 걱정하시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김 대행이 문제를 제기한 현안과 관련해선 대부분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전해철 행안ㆍ박범계 법무장관 등 선거 관련 장관들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대해선 "대통령이 특정 정당 소속이라 불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한 게 없지 않느냐”며 “당적을 보유했다고 불공정할 것이란 것을 기우”라고 했다. 특히 이 발언에 대해 김 대행은 회동 뒤 기자들에게 “매우 납득 못할 주장이다. 3년 전 울산시장 사건의 경우 대통령이 결코 중립을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 대행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결정적인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해당사자다.

"여야정 협의체를 3개월 단위로 정례화하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도 김 대행이 확답을 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됐다. 청와대가 이날 '조화'의 뜻을 담아 오찬 메뉴로 준비했다는 비빔밥의 의미도 결과적으로 퇴색됐다.

 야당이 제기한 현안에 대해 말을 아낀 문 대통령은 대신 한·미 정상회담 결과나 북한 문제 등에 대해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한ㆍ미 연합 군사훈련과 관련해선 “코로나로 인해 과거처럼 많은 병력이 대면훈련을 하는 것은 여건상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외교가에선 "8월 연합훈련을 실기동 훈련으로 변경하려는 미국측의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한·미는 그동안 북한의 입장을 감안해 실기동 훈련을 사실상 폐지하고 지휘소 연습 위주의 훈련을 해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국군 55만명에 코로나 백신을 제공한다”고 밝힌 배경이 실기동 훈련 재개의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여야 대표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열린민주당 최강욱, 정의당 여영국,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여야 대표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열린민주당 최강욱, 정의당 여영국,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문 대통령은 또 “전작권 전환 시기가 특정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귀속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당초 ‘임기내 전환’을 공약했다가 ‘조속히 전환한다’며 한발 물러난 상태다.

대만 문제 등이 적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한·중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에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중국과 소통하고 있다"며 "한ㆍ중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계속하고 있고 양국 간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관련해서도 “코로나로 인해 시기 등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계속 협의해나가면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여야 5당 대표 초청 오찬에 참석한 뒤 내용을 설명하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여야 5당 대표 초청 오찬에 참석한 뒤 내용을 설명하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태화ㆍ성지원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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