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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바이든 회담 6일 전, 김정은 "전략적 지위" 꺼내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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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략적 지위’ 상승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지난 5일 군인가족 예술소조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과 리 여사가 공연을 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지난 5일 군인가족 예술소조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과 리 여사가 공연을 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5일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를 빛내기 위한 중요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에 상응하게 자주적대를 확고히 견지하면서 대외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국가제일주의 시대의 과제로 꼽았다.

노동신문 "우리 대외적 지위 상승 #자주권 존중 국가들과 친선단결" #'핵보유국 지위 달성' 다시 강조한 듯 #바이든 향해 '강대강 선대선' 재표명

이어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는 공화국의 존엄과 위상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선 위대한 새 시대”라며 “우리 당과 인민의 결사적인 투쟁에 의해 우리 국가의 대외적 지위에서는 상승 변화가 일어났으며, 우리 공화국은 세계정치구도의 중심에서 주변 형세와 국제정치 흐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 친선단결을 강화하고 진정한 국제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입장”이라면서다.

이날 보도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을 엿새 앞두고 나왔다. 북한이 전략적 지위와 대외적 지위 상승 등을 언급한 것은 핵무력 완성에 따라 이미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됐다는 기존의 주장을 다시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향후 북ㆍ미 협상은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대화로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아왔다.

북한 외국문출판사가 12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화보 '대외관계 발전의 새 시대를 펼치시어'. 김 위원장이 2018년 3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환영을 받으며 걸어가는 사진이 실려있다. 왼쪽부터 리설주 여사, 김 위원장, 시 주석, 펑리위안 여사. 뉴스1

북한 외국문출판사가 12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화보 '대외관계 발전의 새 시대를 펼치시어'. 김 위원장이 2018년 3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환영을 받으며 걸어가는 사진이 실려있다. 왼쪽부터 리설주 여사, 김 위원장, 시 주석, 펑리위안 여사. 뉴스1

자주권 언급 역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는 그간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의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2020년 6월),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2016년 5월) 등의 발언을 통해 ‘방어적 수단으로서의 핵 보유’라는 식으로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자주권을 존중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겠다고 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공들이는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체 복원에 맞서 중국 및 러시아 등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가치외교를 중시하며 북한을 ‘인권 불량 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북한은 인권 문제 제기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고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입장 표명으로 북한이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번주 도발과 관망 중 어떤 선택지를 고를지 관심이 높아진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김 위원장이 1월 8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강대강, 선대선’ 대미 원칙을 다시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북한은 북핵 문제를 다루는 주요한 외교 행사에 맞춰 도발해온 전력이 있다. 2017년 5월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북핵을 규탄하는 성명을 채택하자 연이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다.

15일(현지시간) 델라웨어로 향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델라웨어로 향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도발 시 얻을 실익보다 손해가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섣불리 도발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와 길게는 8년을 보고 가야 하는데, 북한이 첫걸음에서부터 도발로 판을 흔들려고 할 경우 미국이 외교적 관여보다 압박 강화로 다시 돌아설 수 있다”며 “또 고강도 도발을 할 경우 제재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경제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 내용이 확인될 때까지는 북한 역시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말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 완료 사실을 밝힌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소나기 담화를 내 한국과 미국을 비난했지만, 미국의 새 대북정책을 직접 겨냥하진 않고 다른 구실을 찾았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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