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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모테기 뻣뻣한 투샷…거리감만 남긴 한일 20분 회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ㆍ개발장관회의를 계기로 상견례를 겸한 첫 양자회담을 했다. 사실상 미국의 중재로 어렵사리 회담이 성사됐지만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양국 간 현안에 대한 이견만 확인했고 앞으로 남은 과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①뻣뻣한 투샷에 멀찍이 선 단체사진

지난 4일과 5일(현지시간) 이틀에 걸쳐 개최된 G7 회의에 참석한 7개 회원국과 및 한국을 비롯한 4개 초청국 외교장관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에서조차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 간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각각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4개 게스트 국가들은 각 방향에 골고루 섰는데 모테기 외상은 바로 앞자리엔 또다른 초청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외교장관이 섰다.

5일(현지시간) 촬영한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한 7개 회원국과 한국을 비롯한 4개 초청국 외교장관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 왼쪽 맨 끝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섰고 오른쪽 맨 끝에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이 섰다.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이 선 위치의 빨간 동그라미는 기자가 표시. [외교부]

5일(현지시간) 촬영한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한 7개 회원국과 한국을 비롯한 4개 초청국 외교장관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 왼쪽 맨 끝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섰고 오른쪽 맨 끝에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이 섰다.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이 선 위치의 빨간 동그라미는 기자가 표시. [외교부]

양자회담에서도 느낌은 비슷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한ㆍ일 외교장관 회담 사진은 한국 외교부가 배포한 게 유일한데,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 모두 굳은 표정과 뻣뻣한 자세로 정면만 응시하고 있다. 회담장엔 양국 국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막판까지 양자회담 성사 여부가 불확실해 사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정황으로 해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기자들과 만나 "한ㆍ일 회담이 런던 현지에 가서 임박해서 확정됐다"며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출국 할 때까지도 유동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5일(현지시간) 한ㆍ일 외교장관 회담 사진.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이 나란히 서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외교부]

5일(현지시간) 한ㆍ일 외교장관 회담 사진.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이 나란히 서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외교부]

② '위안부 합의' 다시 꺼낸 국무부

20분동안의 한ㆍ일 양자회담에서 모테기 외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판결을 언급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각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곧바로 확정됐다. 지난달 21일 피해자 20명이 낸 사실상 똑같은 내용의 소송에서는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해 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5일 항소 방침을 밝혔다.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모테기 외상의 문제 제기에 정 장관은 "일측의 올바른 역사인식 없이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대응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판결 두개가 존치하며 정부는 쉽사리 국내적 설득에 나서기도, 일본을 압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의용-모테기, 11개국 촬영서도 양 끝에 #한ㆍ일 과거사 문제 평행선만 확인 #미 국무부 '2015년 위안부 합의' 언급 #'북한 비핵화' vs '한반도 비핵화' 이견도 #대북 정책 이견 해소도 과제

이처럼 한ㆍ일이 예상대로 평행선만 달린 가운데 미국 측에선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를 환영할만한 해법으로 꺼내들었다. 젤리나 포터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미국은 한ㆍ일이 치유와 화해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역사 문제에 있어서 협력하길 독려해왔다"며 "양국이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했던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와 같은 노력을 환영한다" 말했다.

젤리나 포터 미 국무부 부대변인 5일(현지시간) 브리핑 중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 관련 내용. 밑줄은 기자가 표시 [미 국무부]

젤리나 포터 미 국무부 부대변인 5일(현지시간) 브리핑 중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 관련 내용. 밑줄은 기자가 표시 [미 국무부]

문재인 정부로선 "위안부 합의를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는 말만 반복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합의 계승 및 이행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2015년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정신에 따라 일본이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문제의 99%는 해결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일본 탓이라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조야의 인식은 차이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12월 위안부 합의의 내용적·절차적 하자가 심각하다며 합의에 따라 일본이 10억엔을 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고, 먼저 사실상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것이라는 일본 측 입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제와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하는 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려면, 정부로선 화해·치유재단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본 정부의 출연금 잔금(약 56억원)을 합의 취지에 맞게 해소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③ 북핵 해법도 온도차

모테기 외상은 5일(현지시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는 데 대해 "(미국 정부의 방침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미ㆍ일이 일치하고 한ㆍ미ㆍ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꾸준히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는데 미국의 원칙적인 입장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은 종종 '한반도 비핵화'를 남한의 비핵화, 즉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시켜온 점을 의식한 입장 표명이다. 지난달엔 스가 총리까지 나서서 미ㆍ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극도로 반발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언급했다.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 [AFP=연합뉴스, 뉴스1]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 [AFP=연합뉴스, 뉴스1]

반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왔고, 2018년 판문점 선언에서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CD)라고 표현한 뒤 이를 공식 용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윤곽을 드러냈지만 한ㆍ일 간 대북 접근법의 이견으로 인해 완벽한 공조도 당장 쉽지는 않을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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