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사·군필자 급증 의사 없는 보건소 는다

중앙일보

입력

여의사·군필자 급증 의사 없는 보건소 는다
2018~2020년엔 절반 못 채울 수도
은퇴 의사 활용 등 대책 서둘러야
충청 지역 한 군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 A씨는 하루가 짧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갈 수 없는 노인은 많은데 하루 6~7명을 진료하고 나면 해가 저물기 일쑤다. A씨는 "환자 상태를 충분히 살피려면 4명 진료도 벅차다"며 "인원과 예산 부족으로 의사의 손길이 절실한 암환자를 돌보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보건소 의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도 빠듯하지만 앞으로는 더 문제다. 여자 의사가 계속 늘어나고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예비 의사의 상당수가 이미 군대에 갔다 온 대졸자로 채워질 전망이다. 보건소 근무로 군복무를 대신하는 공중보건의사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 공보의가 줄어든다=올해 면허를 받은 새내기 의사 3488명 가운데 여성은 37.2%에 이른다. 2004년 27.7%, 2005년 31.9%에 이어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또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후 공보의 후보군도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4개 전문대학원 신입생 중 군 미필자는 10%에 불과했다. 신입생의 절반 이상(67%)이 여성이고, 나머지 남학생 10명 중 7명은 군복무를 마친 상태였다. 41개 의대 중 27개교가 전문대학원을 만들었거나 만들 예정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런 추세면 2018~2020년, 매년 새로 공급 가능한 공보의는 250~260명(한방.치과 제외)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3년 복무를 감안하면 전체 공보의는 지금의 3분의 1인 750명 선에 불과하다. 보건소와 지소 1528곳의 절반이 의사를 못 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 먼 미래 일 아니다=이미 일선 보건소에선 위기감이 팽배하다. 복지부는 올해부터 보건소와 민간병원을 연계해 원거리 X선 사진판독 시스템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공보의가 모자라 X선 판독을 못해 결핵 조기진단에 구멍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군의관보다 공보의가 편하다는 말은 '뭘 모르는 소리'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공보의가 업무 후 민간병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다 적발돼 물의를 빚기도 했고, 올해 군의관 신체검사에선 공보의로 빠지기 위해 일부 후보생이 혈압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보건소장은 "고령화로 업무는 늘어나는데 공보의는 줄고 있어 곧 공보의를 군의관보다 더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사 양성에 적어도 6~8년이 걸리기 때문에 공보의 부족 시기가 10여 년 후 일이라고 느긋하게 있다간 낭패볼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보의 업무의 군살빼기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관계자는 "민간병원과 중복되는 업무는 과감하게 줄이고, 공보의를 일반 행정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보건진흥원 이재현 연구원은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전병률 보건정책팀장은 "행정구역에 맞춰 설립된 보건소와 지소를 실제 수요에 맞게 재편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공중보건의사=군 복무를 대신해 보건소.보건지소.공공병원 등에서 3년간 일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말한다. 1981년에 농어촌 위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군의관 지원자 가운데 군의관 수요와 신체검사 결과 등을 감안해 공보의를 뽑게 된다. 보수는 군의관과 비슷하며 수련의.전문의 등 의사 경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