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 쪼갠 등산스틱서 'DNA 3점'···등산로 살인 미궁 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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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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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남성이 부산 서구 시약산 등산로에서 피살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29일 70대 남성 A씨의 소지품에서 제3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 DNA가 발견돼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A씨가 살해 당시 갖고 있던 등산 스틱에서 제3자의 조각난 DNA 3점이 발견됐다. 등산 스틱에서 긁힌 자국을 발견한 경찰은 긁힌 부분 주변을 24조각으로 분해해 미세 DNA까지 채취한 끝에 조각 DNA를 확보했다.

유력 용의자 DNA와 대조

DNA는 모두 3개로 1개는 남성, 나머지 2개는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 DNA가 동일 인물 것인지, 각기 다른 사람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조각 DNA여서 경찰이 보관하는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와 비교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수사 선상에 있는 다수의 용의자를 상대로 DNA를 채취한 뒤 비교 대조해 동일인을 찾아낼 수 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DNA가 A씨 시신을 병원에 옮긴 소방대원이나 의료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수사 선상에 있는 140여명 가운데 유력한 용의자 순으로 DNA 대조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A씨 얼굴 부위에 집중적으로 찔린 흔적이 있고, 상흔이 조잡하다는 점을 바탕으로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우발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계획범죄였다면 급소를 찌르거나 범행이 쉽도록 긴 도구를 사용했을 텐데, A씨 몸에 나타난 가장 깊은 상처가 7㎝로 비교적 짧은 편”이라며 “말다툼을 했을 때 입 주변에 상처를 많이 낸 사례 등이 있어 우발적 범행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통 우발 범행은 가해자 손에서 DNA가 많이 떨어져 나오는데 현장에서 가해자의 체모나 체액 등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가해자가 등산 장갑을 끼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또 피해자 방어흔이나 남겨진 상처 등 과학적 자료 등을 바탕으로 했을 때 가해자는 여성보다는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과 관련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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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피해자 지인 등 140여명 수사 중

경찰은 78명의 수사 인력을 동원해 등산로 인근 410여 세대 마을 주민과 피해자 지인을 상대로 알리바이(현장 부재 증명)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또 90여 개의 폐쇄회로TV(CCTV)와 3000여개 통화 녹음 파일도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주변인과 등산로 아랫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저인망식 수사를 하고 있다”며 “전방위적인 수사로 앞으로 한 달 안에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일 오전 6시쯤 부산 서구 시약산 등산로 입구에서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발견했다. A씨가 살해된 곳은 작은 등산로 두 개가 만나는 지점 인근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A씨는 주말에 텃밭이 있는 시약산에 정기적으로 등산했다고 한다. A씨 시신은 등산로 바로 옆에서 발견됐고 은폐돼 있지 않았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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