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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하나마을 겨울 밥상

중앙일보

입력

생식마을에선 겨울을 어떻게 날까. 고구마나 곡분을 씹어 먹으며 산촌의 기나긴 밤을 지내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 지난 9일, 3년 만에 다시 찾은 생식마을 한농복구회 하나마을(문경·상주지부) 점식 식탁은 화려하고 풍성했다. 취재진을 위해 밥과 시래깃국을 내오긴 했지만 다른 음식은 모두 생곡물과 구근, 하우스 채소로 모양과 맛을 냈다. 2003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초여름. 당시 케이크·떡·비빔밥 등 환갑잔치 상을 생식으로 차렸던 솜씨가 푸성귀 등 먹거리가 귀한 겨울에도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 배추.무는 땅에, 산나물은 김치냉장고에

지리산 끝자락 산간마을엔 겨울이 일찍 온다. 11월이면 다음해 3~4월까지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여유있게 저장해야 하는 것. 장기 보관용은 동네 어귀에 있는 저장창고를 이용하고, 가정에선 옛 조상의 저장방식인 움 저장을 한다. 얼음이 얼기 전 땅을 파고 식품을 묻는 것이 움 저장법. 겨울에 구하기 힘든 배추나 무는 낱개로 싸고, 감자나 고구마는 자루에 넣어 섭씨 10도 정도의 저온 저장을 한다. 곡물이나 구근류, 채소에서 영양을 얻는 데는 별문제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비닐하우스에선 상추와 치커리.시금치.보리 새싹 등이 자라고 있어 여름 채소 공급도 가능하다. 하지만 야생 산나물에 비해 비타민과 미네랄, 그리고 식물성 생리활성물질인 파이토 케미컬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따라서 가을에 들에서 수확한 냉이나 씀바귀 등 야생 나물을 씻지 않고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점심 식탁에 오른 냉이 무침은 방금 캔 듯 파릇파릇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 설탕 안 쓰고 소금은 절반만

생식이 맛없고 재미없는 식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양념과 요리 방법을 바꾸면 맛과 모양이 화식에 뒤지지 않는다. 보리를 불려 살짝 분쇄한 뒤 꿀을 넣고 반죽한 경단, 대추 속에 솔잎이나 파래 가루를 넣고, 캐슈넛 가루와 잣을 가미한 대추선, 통밀.보리로 만든 다식, 밀 글루텐으로 만든 밀고기 등은 생식이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

생식마을의 조리 원칙은 자극적인 맛과 향은 최대한 배제하면서 천연식품이 가진 고유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는 것. 따라서 양념도 가려 쓴다. 우선 단맛을 내는 데 일절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다. 손님용 화식의 경우 일부 유기농 설탕을 사용하지만 모든 음식의 단맛은 100% 꿀로 낸다. 또 다른 원칙은 소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금화 어머니회제(長 대신 형제라는 뜻의 弟를 쓴다)는 "이곳 주민이 먹는 소금 양은 일반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꼭 소금을 써야 할 때는 아홉 번 구운 죽염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매운맛도 거의 없다. 생강과 마늘은 거의 쓰지 않고, 후추는 아예 구경할 수 없다. 비빔밥과 같이 고추장 색깔이 필요하면 토마토 퓨레를 만들어 사용한다. 신맛을 내기 위해 양조식초 대신 천연 매실 진액을 활용한다.

*** 점심엔 채소 듬뿍, 저녁엔 과일 몇 쪽

5년 전 암을 극복한 권영은(47.여)씨는 오전 3시30분이면 일어나 산에 오르고, 6시면 아침 식사를 한다. 겨울이라도 몸에 열이 넘쳐 생식을 해도 춥지 않다. 아침은 곡분 반 공기에 뿌리채소 서너 쪽, 그리고 땅콩 몇 알과 호두 한 개, 들깨가루를 조금씩 골고루 섭취한다. 하루 중 가장 풍성한 진수성찬이다. 같은 음식이 질리면 생보리를 두세 시간 불린 뒤 그릇에 담아 각종 야채를 넣고 토마토 퓨레로 버무려 먹는다. 때론 경단이나 쌀종이(쌀을 물에 담가 불렸다가 롤러로 압착해 종이처럼 만듦)를 김에 싸서 올리브유에 찍어 먹기도 한다. 권씨는 "종종 산에서 내려오면서 따온 솔잎으로 말린 대추를 싸서 먹는다"며 "대추의 단맛과 솔잎 특유의 맛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점심은 곡물 가루.견과류와 함께 채소를 듬뿍 먹는다. 상추.청경채.치커리 등 녹색 엽채류를 생으로 또는 매실 진액과 꿀로 무쳐 먹거나 큰 김에 채소를 넣어 둘둘 말아먹는다. 대신 저녁은 과일 몇 쪽이 전부다. 이 정도라면 배가 고플 것 같지만 많이 먹으면 오히려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 콩.들깨로 지방.단백질 보충

생식이라면 비타민이나 미네랄, 탄수화물은 풍부하지만 지방이나 단백질은 왠지 부족한 듯싶다. 하지만 이 또한 생식에 대한 오해 중 하나다. 예컨대 콩은 대표적인 단백질 공급원이다. 콩을 그냥 먹기도 하지만 비린내가 싫은 사람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가루를 내 콩국을 만들어 먹는다. 밀고기(밀에서 얻는 글루텐을 고기 형태로 만들어 약간의 올리브유와 버섯을 넣고 데워 먹음) 역시 훌륭한 단백질 음식. 또 지방은 호두나 땅콩 등 견과류와 들깨 등에 듬뿍 들어 있다. 특히 이들 식물성 기름은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육류의 포화지방산이 아닌 건강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다.

생식마을에서 주로 먹는 도정하지 않은 곡식은 섬유질뿐 아니라 미세 영양덩어리다. 또 구근류의 당질은 탄수화물의 좋은 공급원이 되고, 녹색 채소 등의 엽채류는 생리활성 물질을 제공한다. 이들 복합 탄수화물에는 각종 비타민은 물론 항산화효소가 많아 성인병과 노화를 방지해준다. 이곳 효도마을의 80, 90대 노인들조차 고혈압이나 당뇨.고지혈증 환자가 없고, 건강하고 맑은 피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 하나마을 주민의 하루 식단

■아침:오전 6시

(1) 곡물 가루(곡분) : 1) 또는 2) 또는 3) 형태로 섭취

1) 도정 안 한 보리, 율무, 수수, 현미, 검정쌀, 현미 찹쌀 등 5~6가지 생곡물을 분쇄기에 갈아 밥 대용 섭취 (큰 스푼으로 3~4스푼 또는 반 공기 정도)

2) 통밀을 자연건조해 롤러로 압착, 천연 곡물 플레이크 형태로 섭취 (주로 콩국에 말아서 함께 먹음)

3) 쌀가루를 얇게 압착시켜 쌀종이를 만들어 먹거나, 김에 싸서 섭취(올리브유에 찍어 먹기도 함)

(2) 구근류(뿌리채소)

고구마, 감자, 무 등 구근류를 생물로 얇게 썰어 섭취(한 끼에 두세 종류를 두세 쪽)

(3) 견과류 및 콩류 : 땅콩(6~7알), 호두(1개), 잣(5개), 들깨가루(한 숟가락), 콩(6~7알) (콩류는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낟알 그대로 섭취)

(4) 대추, 솔잎 : 생솔 잎과 말린 대추를 함께 섭취. 대추의 단맛과 솔잎 특유의 맛이 잘 어울림

■점심: 낮 12시

(1) 곡물 가루(상동)

(2) 엽채류(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상추, 청경채, 치커리 등)

.생으로 또는 매실 진액과 꿀로 무쳐 먹거나, 큰 김에 각종 채소를 넣고 말아 김밥처럼 섭취

.새싹채소는 겉절이처럼 담가 먹음

(3) 견과류(상동)

■저녁: 오후 6시

.과일 중심으로 가볍게 섭취

.귤 3개, 사과 한 쪽, 감 한 쪽, 배 한 쪽 분량

(계절에 따라 포도, 딸기 등 바꿔줌)

.간식으로 포도즙을 섭취하기도 함

*** 생식을 할 때는…

① 친환경 농산물로 신선도 유지해야

②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 균형 위해 다양한 식품 원료 활용

③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메뉴 개발

④ 천천히 씹으면서 천연 생식의 맛과 향을 음미

⑤ 처음 생식을 시작할 때는 몸의 컨디션에 따라 양과 방법 조절 (예:적응 어려우면 하루 한끼, 또는 절반은 생식, 나머지는 화식으로 시작)

⑥ 운동하면 생식 흡수율 높아지므로 생식과 운동을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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