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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뺨때린 벨기에대사 부인 느닷없는 입원…처벌 방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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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한 의류 매장에서 주한벨기에 대사의 부인 A씨가 직원을 폭행했다. 사진 피해자 제공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한 의류 매장에서 주한벨기에 대사의 부인 A씨가 직원을 폭행했다. 사진 피해자 제공

서울 용산의 한 옷가게 직원들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에서 조사받는다 해도 ‘면책특권’을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문가는 “면책특권은 ‘절대 반지’가 아니다”라며 “빈협약을 자세히 따져 보면 처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피터 레스쿠이 주한벨기에 대사의 부인 A씨는 지난 9일 옷가게에서 직원들의 뺨과 뒤통수 등을 때린 혐의로 입건됐다. 그러나 병원 입원을 이유로 경찰 출석 요구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또 아직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첫번째, 재판권 면제 포기  

면책특권의 근거는 1961년 빈에서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이다. 한국에서는 1971년 효력이 발생했다. 외교관은 협약 31조에 의해 민사 및 형사, 행정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를 향유한다. 즉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에서는 재판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협약 32조는 ‘재판관할권 면제의 포기’를 규정한다. 파견국, 즉 벨기에 측에서 “A씨에 대한 재판관할권 면제를 포기한다”고 밝히면 수사는 물론 재판에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국내에서 이러한 사례가 있었다. 2016년 5월 일행과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던 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밀친 혐의로 체포됐던 주한 뉴질랜드 외교관은 현장에서 면책특권을 이유로 풀려났다. 그러나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이 “해당 직원의 면책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면서 수사가 진행됐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중앙일보에 “면책특권의 취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양국 간 우호 증진과 외교 공관의 직무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옷 사러 갔다가 벌어진 직원의 실수에 분노한 건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승 박사는 “빈협약 41조는 ‘자국 법령 존중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며 “벨기에가 면책특권 포기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추방 후 인터폴 수배  

이보다 강제적인 방법도 있다. 대사관의 면책특권은 접수국에 해당하는 것이지 파견국까지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빈협약을 이용하는 것이다.

A씨를 한국에서 추방해 그가 벨기에로 돌아가면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령하고, 벨기에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양국 간 외교 마찰을 불러올 수 있기에 과거 강대국에서 주로 쓰던 방법이라고 한다.

세 번째, 외교부의 중재

외교부가 A씨와 피해자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방법도 있다. A씨에게 적용된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진다. 외교부가 A씨 측에 진정한 사과와 함께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경제적 손해를 충분히 보상한다면 피해자들이 선처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협상하는 것이다.

승 박사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에 대해 외교부가 침묵하고 있어선 안 된다”며 “이번처럼 자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일수록 외교부가 제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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