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도 … 그의 붓을 못 꺾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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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루게릭병과 싸우면서도 붓을 놓지 않는 독일의 화가 외르크 임멘도르프(60.그림(右)은 자화상). 그의 작품 40점이 국내 팬들을 찾는다.

그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우리를 세계에 알리는 대사"라고 극찬할 정도로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 화가다. 작품성 못지 않게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투병 중에 30세 연하의 제자와 결혼해 두 딸을 두고 2003년에는 호텔방에서 매춘부들과 코카인 파티를 벌이다 체포됐다. 그래도 화가로서의 명성은 빛이 바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1기는 반정부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주로 담은 1970~80년대다. 또 2기는 독일 통일 이후 투쟁 대상을 잃고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기 시작한 90년부터. 3기는 발병 후 왼손을 못써 오른손잡이로 바꾸고 좀더 철학적인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98년부터다.

18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충남 천안시 아라리오 갤러리(041-551-5100)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브론즈 조각 10점을 포함해 1972~2000년 제작된 40점이 소개된다.

1972년작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해라', 유명한 '독일 카페' 연작 중 1983년작, 김일성을 그린 'Kim', 예술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작가 자신을 상징한 1995년작 '자화상' 등이 눈길을 끈다. 짙은 청색과 황금색을 사용해 기괴하고 전위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그의 작품세계를 한껏 맛볼 수 있다. 독일 베를린의 현대미술관에서 9월 시작된 임멘도르프 특별전도 이번 전시와 같은 기간 계속된다.

아라리오 갤러리 측은 "작가가 최근 병이 악화돼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손가락이 거의 마비됐지만 한국행을 강력히 희망했다"며 "특히 이번 한국전이 생전의 마지막 전시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루게릭병=공식 병명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이다. 루게릭병 환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감각 신경과 의식은 그대로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도 불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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