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시가탓 건보 피부양 탈락, 칠순 부모가 뭔 죄냐"

중앙일보

입력 2021.04.05 05:00

업데이트 2021.04.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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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의 건강보험공단 지사 외경. 뉴스1

서울의 건강보험공단 지사 외경. 뉴스1

"소득 없는 1주택 은퇴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상실을 반대합니다."

지난해 말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대 노부부의 자녀가 이런 호소문을 올렸다.

자녀가 글 "집값 폭등은 정부 책임
소득없는 1주택 은퇴자 탈락 반대"

재산 과표 9억원 등 기준에 걸려
매년 2만명 피부양자 대상 제외

그의 부모 집은 지난해 공시가격이 15억200만원으로 전년보다 약 20% 올라 피부양자 탈락 통보를 받았다. 그 전까지 건보료가 0원이었고 지난해 11월부터 월 22만원(추정치)의 건보료를 내고 있다. 피부양자 탈락 기준(과세표준액 9억원 초과)에 해당한다.

소득 한 푼 없지만, 재산과 차에 건보료를 문다. 이 주택의 공시가격은 2017년 8억5600만원에서 지난해 15억200만원으로 3년 새 거의 두배로 올랐다.

4월 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4월 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그 자녀는 "부모님이 부동산 투기를 했습니까. 한곳에 오래 산 것이 죄입니까. 지금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은 이 정부의 책임 아닙니까"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자유 경제의 원리대로 시장이 흐르게 두지 않고 각종 규제에다 공급을 막는 방법으로 부동산을 폭등시켰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부모님이 평생 일군 집 한 채, 차 한 대가 전부이다. (중략) 정부는 괴로워하는 국민이 진정 보이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은퇴자 괴롭히는 건보 재산 과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은퇴자 괴롭히는 건보 재산 과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해 이 노부부만 그런 게 아니다. 1만9045명이 재산 기준을 초과해 피부양자에서 탈락했다. 4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2020년 6만3896명이 재산 때문에 탈락했다. 특히 2018년 재산 기준을 강화하면서 탈락자가 급증해 매년 2만명 가깝게 탈락한다. 그 전까지 재산과표(과세표준액) ①9억원(형제·자매 3억원) 초과만 탈락했는데 여기에다 ②5억4001만~9억원이더라도 연 소득 1000만원 넘으면 탈락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지난해 탈락자는 ①② 해당자가 절반씩 차지한다.

2016년 이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4.4~6% 오르다 올해 무려 19.08% 인상됐다. 새 공시가를 적용하는 올 11월에는 탈락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는 1만8000명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과소 추정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국민청원의 노부부 같은 종전 탈락자는 올 공시가 폭등 탓에 11월부터 재산 건보료 부담이 크게 오르게 된다. 이들은 인하 혜택도 못 받는다. 올해 11월 신규 탈락자만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50%를 인하주기 때문이다.

공시가 인상 등 재산초과 탈락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시가 인상 등 재산초과 탈락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2017년까지 2000만명이 넘었으나 2018년 소득·재산 요건을 강화하면서 계속 줄어 지난달 말 1861만명으로 떨어졌다. 이 중 19세 이하 미성년자가 37%로 가장 많고, 60대 이상이 28.8%를 차지한다. 은퇴했거나 경제활동이 미약한 고령층들이다. 여성이 남성의 1.7배에 달한다. 공시가격 급등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피해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

한국처럼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대만·일본이다. 한국은 독일·일본 제도를, 대만은 한국 것을 본떴다. 그런데 피부양자를 따질 때 재산을 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독일·대만은 재산에 아예 건보료를 매기지 않는다. 일본도 재산 비중을 계속 줄이고 있다.

다만 한국이 조부모까지 피부양자로 인정할 정도로 범위가 가장 넓다. 독일은 배우자와 자녀까지만 인정한다. 한국은 직장가입자(1854만명)보다 피부양자(1861만명)가 약간 많지만 다른 나라는 훨씬 적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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