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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환자 부담 8월부터 크게 준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췌장암 진단을 받은 A씨(60)는 지난해 9월부터 젤로다라는 스위스산 수입 항암제를 복용하고 있다. 최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더니 암세포 크기가 1년 전과 똑같은 것을 확인했다. 혈액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암세포 진행이 멈춘 것이다. 머리가 빠지거나 소화가 안 되는 등의 부작용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약은 건강보험에서 위암과 유방암 등에만 쓰도록 돼 있어 건보 혜택을 못 본다. 그래서 약값 전액(월 100만원가량)을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올 하반기 중에 A씨의 약값 부담이 20만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항암제에 대한 각종 건강보험 제한 규정이 대폭 완화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2일 "암환자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 같은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르면 8~12월 중 단계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항암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허가받을 때 지정된 암이 아니면 효과가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고, 보험 적용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의사들이 다른 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임상 경험이나 국내외 논문 등을 근거로 비보험으로 처방하고 있다.

또 식의약청에서 항암제를 허가할 때 1회 사용량과 횟수, 사용 주기 등이 정해져 있으며 이 규정에 맞게 사용할 경우에만 건강보험이 인정된다. 가령 허약한 환자에게 양을 약간 줄여서 사용하면 보험 적용이 안 된다.

이 같은 제한을 받고 있는 항암제는 50여 개다. 한 항암제가 다른 암이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200여 가지의 치료법이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규제를 받는 항암제는 대부분 다국적 제약회사가 제조한 고가의 신약이어서 환자들은 한 번 치료받을 때 100만~20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대개 항암제는 6~9회 사용하기 때문에 1000만원 이상이 든다.

암환자들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항암제 비용으로 연간 500억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복지부는 추정하고 있다.

복지부는 사용량이나 횟수 제한을 푸는 게 더 쉽다고 보고 이르면 8월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다른 암에 항암제를 사용하는 행위는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대로 올해 중 시행할 예정이다.

항암제 건보 제한을 풀 경우 암 환자의 부담이 지금보다 30~50% 줄어들게 된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2004년 말 현재 전국의 암환자는 30만여 명이며 지난해 총 진료비가 2조350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반을 약간 넘는 1조2000여억원을 환자가, 나머지는 건강보험이 부담했다.

[뉴스 분석] 두 가지 약 함께 써 보험 안 됐던 폐암 환자
부담 960만원 → 192만원

"한 달에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약값을 포함해 병원비가 300만원 넘게 나옵니다. 우리 애가 치료받는 항암제가 제발 보험이 적용되도록 해 주세요. 저희 아들을 살려주세요."

19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암(골육종)에 걸린 아홉 살 소년의 아버지가 올린 글이다. 그는 "우리 애에게 쓰는 항암제(탁솔)가 난소암이나 폐암에 걸린 어른에게만 보험이 적용된다"면서 보험 적용 확대를 요구했다.

복지부가 항암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려는 이유는 환자들의 이런 딱한 사정 때문이다.

적용 확대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항암제 사용량이나 사용법 제한을 푸는 것이다. 폐암 환자인 C씨(56)는 치료 도중 체력이 떨어져 미국산인 항암제 젬자를 900㎎만 맞았다. 또 처음 맞고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맞도록 돼 있으나 두 번만 맞은 것이다. 그래도 약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1회 1000㎎, 세 번 투여'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보험 처리가 안 돼 한 차례(1사이클) 약값 130만원을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이르면 8월부터 보험이 적용되면 C씨의 약값은 130만원에서 26만원으로 줄게 된다.

위암의 일종인 기스트(위기저부 종양)에 글리벡을 쓸 경우 1회에 600㎎을 사용토록 돼 있으나 800㎎을 쓰면 200㎎만큼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는 한 달에 150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800㎎이 더 효과가 좋다는 국내외 논문에 따라 사용하는데도 보험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앞으로 의사가 판단해 용법과 용량 등을 일부 바꾸더라도 보험을 적용토록 할 방침이다.

또 다른 확대 방안은 식의약청이 허가하지 않은 다른 암에 약을 쓰더라도 보험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 기업인 CJ가 제조하는 캠푸토와 스위스산인 젤로다를 폐암 환자에게 동시에 투여하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여섯 차례(6사이클)에 960만원을 환자가 내야 한다. 이 경우 보험이 적용되면 192만원만 내면 된다. 국립암센터 이진수 폐암연구과장은 "53명의 폐암 환자에게 두 약을 동시에 투여했더니 효과가 있었고, 이 결과를 미국 학회지에 게재할 예정"이라며 "의학적 근거가 있으면 보험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항암제 보험 확대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규제가 풀리면 항암제를 너무 쉽게 사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요즘 나오는 신약들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제품이 대부분이며 한 번 쓰는데 100만원을 넘는 고가 약이 많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암 환자 부담을 줄이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고가의 항암제에 대한 제한을 풀게 되면 비전문가에 의한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또 "돌볼 사람이 없거나 돈이 없어 병원에 아예 가지도 못하는 저소득층 암환자나 호스피스 서비스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말기암 환자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더 급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이런 이유 때문에 암환자들이 사용하는 알부민 등의 영양제는 계속 보험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암 환자가 쓰는 영양제의 연간 비용은 1000억원에 달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허가받지 않은 다른 암에 항암제를 사용할 경우 국내외 논문이나 임상자료 등의 근거를 제출토록 제한 규정을 둘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암학회는 과학논문색인(SCI)에 논문이 발표된 경우에만 보험을 확대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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