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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자랑 '평화 프로세스'···그 핵인 이도훈, 공관장 배제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때로는 없어서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일들이 있다. 이미 윤곽이 다 그려진 외교부의 이번 춘계 공관장 인사에서 이도훈(59)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이름이 빠진 게 그랬다.

정부, 대북 성과 '자찬'하면서...  

지난해 12월 퇴임한 이 전 본부장은 31일 현재 아무런 보직을 받지 못했고, 공관장 인사에서도 배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가동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에 깊숙하게 관여하며 3년 3개월이라는 ‘최장수 본부장’ 기록도 세웠다.
특히 카운터파트였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돈독한 관계는 한ㆍ미 간 대북 공조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오죽하면 북한 인사들이 “이도훈을 보니 한ㆍ미 관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깝더라”는 취지로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현장에서

이는 한반도본부장을 했으니 무조건 한 자리를 챙겨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느 직위가 됐든 공과 과는 공정하게 평가돼야 하고, 거기엔 마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전 본부장이 공관장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업무 수행 중 과오가 컸다면 인사에서 배제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전 본부장이 재직한 기간 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했다고 자부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일 한ㆍ미 외교ㆍ국방(2+2) 장관회의 뒤 기자회견에서도 “지난 3년 간 한ㆍ미 양국은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에 계속 관여하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인사의 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명확한 설명 없이 상황 반전  

외교가에는 이 전 본부장이 주요국 대사로 유력했는데, 최근 들어 상황이 반전됐다는 말이 정설처럼 퍼져 있다. 하지만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대신 과거 청와대 핵심 인사가 “아무리 그래도 이도훈은 우리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둥, “미국에다 청와대에 하는 것과는 다른 소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는 둥 흉흉한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한반도본부장을 지내고 보직을 받지 못한 채 퇴임한 건 이 전 본부장이 역대 두번째다. 첫 사례는 그의 전임자인 김홍균 전 본부장(60ㆍ2017년 9월 퇴임)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2016년 9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김홍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 미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앙 포토

2016년 9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김홍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 미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앙 포토

김 전 본부장 역시 주요국 대사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본인 통보까지 이뤄진 뒤 갑자기 인사가 뒤집어졌다. 당시에도 역시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김 전 본부장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 때문에 정부 교체 뒤 미운털이 박혔다는 뒷말만 무성했다.

외풍 타는 인사, 결국 국익 손실로

진짜 이유는 인사권자만 알겠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식의 인사가 공직사회 전체에 주는 메시지다. 공직을 충실히 수행했더라도 정부가 바뀌면 혹은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어서다. 공직자 출신의 한 인사는 “인사가 외풍을 타거나,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공직자들이 맡은 바 직분을 다하기 어려워진다. 자칫하면 이는 국익이 아닌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는 신호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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