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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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그림은 마음의 창이라고도 한다. 평소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림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와 고민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원리를 잘 이용하면 아이들의 심리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를 미술치료라고 한다. 서울 영파여중은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학생들을 미술치료로 선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학교 미술담당 원한새 선생님의 상담기록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아이들의 모습과 미술치료에 대해 알아본다.

"너, 힘들구나"

미술 시간.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나무를 그려보게 했다. 평소 무척 명랑하던 한 아이의 그림이 조금 이상하다. 나무줄기와 가지가 너무 작고 가는 대신 초록색으로 표현한 잎 부분이 지나치게 컸다. 마치 솜사탕처럼.

학생들이 자기 그림에 대해 발표할 때 원 교사는 지나가는 말처럼 "너, 힘들구나"라고 했다. 이 한 마디에 그 학생은 제 발로 진학지도실을 찾아왔다.

한숨을 쉰 아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척 집에 문제가 생겨 조카들이 모두 자기 집에 와 있게 됐는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탓에 자신이 모두 돌봐야 하게 된 것. 그래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원 교사는 "건강한 초록색을 고른 걸 보니 넌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해줬다. 아이는 자신감을 얻고 돌아갔다.

"이상한 것 같다고 불러 상담하면 아무 말도 안 합니다. 넌지시 운만 띄우죠. 지나가는 식으로 '외롭구나''힘들구나' 한마디 해주면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와요. '저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구나'라고 생각하지요."

"누구나 흔들리잖아요"

부모가 이혼한 뒤 방황하던 아이. 사고를 일으켜 학생부 선생님이 상담을 의뢰해왔다.

지점토를 주고 마음을 표현해보라고 하자 만든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차(사진)였다. 어려움은 먹구름과 천둥.번개.돌풍으로 표현했다. 바람에 흔들려 휘어진 나무와 바닥에 물이 고인 웅덩이도 있었다.

"누구나 어려움이 있을 때 흔들리는 것이 생각나서 만들었어요. 어른들도 힘들면 아이들처럼 흔들리잖아요."

흔들리고 방황하는 아이였지만 원 교사는 버틸 수 있는 힘을 찾아냈다. 바로 그림 속의 새싹들이다. 그 부분을 격려해주자 학생은 힘을 얻었다. 그 뒤에도 몇차례 방황을 겪었지만 점차 나아졌다.

"혼자 우는 방울 같아요"

엄마.새아빠와 함께 사는 아이. 문제는 엄마였다. 우울증을 앓는 엄마가 아이를 보면 "같이 죽자"고 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 아이는 바다 그림을 그렸다. 물 속에는 물고기가 가득했는데 바다 위에 덩그러니 빈 배가 하나 떠 있다. "주변에 사람은 너무 많은데 꼭 빈 배만 있는 것 같아요." 아이의 설명은 자기의 신세를 가리킨 셈이다.

그 다음에 진행한 콜라주 작업. 창문이 하나 있는 빈방에 방울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마치 내가 빈방에서 혼자 우는 방울 같아요. 나를 쳐다보는 누군가가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자신의 심정이나 고민을 말하려면 "힘들어요" "우울해요"라고 말할 뿐이지만 작품에 대해 말하면 달라진다.

"제3자의 입장에서 작품에 대해 말하는 식입니다. '색깔이 되게 우울하네'라고 말하면 '우울해요'라고 답해요. 이게 미술치료의 장점이지요."

'풀리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눈여겨 본 아이였는데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첫 작업은 커다란 원에 아무거나 그리도록 하는 '만다라'. 흐리멍텅한 색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온갖 색깔이 어우러져 있는 두번째 그림에는 빨간색 부분이 유난히 크게 도드라졌다. 사람을 그렸다는 아이는 "빨간색 부분이 머릿속에서 피가 터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뭘 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하는 마음 그대로였다.

무채색의 세번째 그림. 왼쪽에는 나무, 오른쪽에는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도시의 사람인데 외롭다"는 것이 아이의 설명.

외로움이 가득 묻어나는 그림이었지만 원 교사는 안심했다.

"사람의 머리 위에 꽃이 피는 것을 그려놓은 거예요.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꽃에 대해 물어보자 "꽃이 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황은 좋아지고 있었다.

네번째 작업. 끈 한 묶음을 쥐어줬다. 아무거나 만들라고 했더니 종이 위에 끈 묶음을 붙인 뒤 한쪽 끝을 길게 늘여 붙여놨다. 그리고는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풀리다.' 아이의 마음이 풀린 것인지, 고민이 해결된 것인지 몰라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 상담을 해보니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원 교사는 말했다.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경험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열쇠도 부모가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부모가 상담이나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아이의 문제가 쉽게 풀리지만 협조하지 않으면 아무리 미술치료를 해도 아이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미술치료, 더 알고 싶으면

▷ 한국미술치료학회 (http://www.korean-arttherapy.or.kr)

▷ 한국미술치료연구센터 (www.katc.org)

▷ 한국표현예술심리치료협회 (www.keapa.or.kr)

▷ 서울 미술치료 연구소 (www.arttherapy.or.kr)

▷ 대전 미술치료 연구소 (www.art-daejeon.org)

▷ 부산 미술치료 연구소 (www.simli75.com)

▷ 원광 예술치료 연구소 (www.artstherapy.or.kr)

▷ 한국상담연구원(미술치료 과정) (www.ki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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